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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 에세이

26 지나가는 모든 것들에 경의를 지나가는 모든 것들에 경의를 큰 아이가 중학교 졸업여행을 갔다. 초등학교를 졸업한게 분명 지난주 같은데, 아이가 떠날 준비를 한다. 놓치고 싶지 않은 기억은 선명한데, 아이의 얼굴에서는 그 기억자국이 자꾸 흐려진다. 그제서야 알았다. 큰 아이를 바라보던 내 눈빛과 내 아비가 나를 바라보던 눈빛이 같은 것임을. 초보 아빠의 좌충우돌에 가장 큰 피해자는 언제나 첫째 아이이고, 그 아이가 자라가며 보이는 약한 부분들이 엉터리 아빠의 제멋대로 때문이었음에 얼마나 괴로워했던가. 그러던 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속썩이는 일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제법 어른스러워지고 말도 줄어들고, 잔소리해야할 일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늘 품에만 있어 날개가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하던 아이가 품안에 제법 늠름하게 자란 날개를 쭉 꺼내들었다.. 더보기
25 어느 봄날 신이 찾아왔다. 어느 봄날 신이 찾아왔다 작은 아이 학원 바래다 줘야 하는 토요일 오전, 그리고 1시간30분정도 기다려야 하는 시간. 근처 2층 커피스미스. 탐독중인 ‘사피엔스’. 늘어지는 봄볕이 깨어지는 유리알처럼 번쩍대며 커피숖에 뿌려진다. 무수히 흩어지는 구슬빛에 눈은 멀것만 같은데, 따뜻한 온기로 온 실내가 충만해진다. 그 온기를 두른채 한없이 기대고 싶어지는 토요일 오전, 커피 한 잔, 책 한권. 살짝 신 뒷맛의 신선한 여운, 아침봄볕에 커피마저 황홀하다. 어쩌다 줍게되는 뜻밖의 행운. 책장 넘어가는 시간이 아쉽다가도, 이 평화로움과 자비로움에 잠을 기대도 보고싶고, 커피 한잔의 황홀함에 취하고도 싶고, 경배하고 싶어지는 자애로움. 어느 봄날 커피숖에 신이 찾아왔다. 더보기
24 암살자가 산다 암살자가 산다. 1970년 후반에 들어간 국민학교는 꼬마에게 거대한 세상이었다. 운동장은 끝없는 대지였고 수없이 많은 학급들은 미처 다 셀 수 없는 바다의 모래였다. 꼬마는 이제 국민학생이 됐다는 설레임과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는 기쁨에 들떠있었다. 학교수업이 끝나고 오후에 친구와 노는 재미도 꼬마에겐 큰 즐거움이었다. 특히, 꼬마는 그네타는게 너무재미있었다. 친구와 함께 밀어주고 바꿔서 다시 밀어주고, 동네에서 놀때는 놀이터라는 개념도 없었고 마땅히 시설이 없었다. 그런데 처음 들어간 학교에는 놀이 시설이 많았다. 놀이터가 마땅히없던 동네에서는 그야말로 신세계였고 그중에서도 꼬마가 가장 좋아하는건 그네였다. 꼬마는 수업이 끝나고 언제나처럼 동네 친구이면서 같은 반친구, 그러니까 1학년15반 친구 홍재와.. 더보기
23 르쇼콜라데디유 카페 제목: 르쇼콜라데디유 카페 일상적인 공간을 떠난 나만의 은신처. 매서운 눈보라속을 사는동안 화석이 되어버린 나의 모든 상상이 깨어나는 시간.대전 조그만 주택가 골목에 위치한 프랑스 초콜릿과 마카롱 전문가게 ‘르쇼콜라데디유’는 눈보라속 내 조그만 텐트다. 처음부터 알아서 선택한 곳은 아니었다. 잘 아는 지인이 가게를 열게 되면서 한번 두번 방문을 하게 된 것이 인연이다. 근 3년을 애용했는데, 서울로 발령을 받는 바람에 더이상 방문을 못하게 됐다. 하루 휴가를 얻어 아침 일찍 ‘르쇼콜라’ 카페에 들렸다. 익숙한 향기와 음악은 벌써 내 뇌의 식욕을 자극해 읽을꺼리 책 한권으로도 부족한 설레임으로 후끈 달아오른다. 쇼콜라 카페는 초콜릿 가게라 달콤한 향이 그득하다. 단내가 차고 넘치면 나중에는 거부감이 들텐데.. 더보기
22 로보캅 로보캅 남자는 가방의 촉감이 좋았다. 생일 선물이라며 아내가 백화점에서 사준 가방이다. 정장이 잘 어울리는 남자는 손에 드는 서류가방이 늘 아쉬웠다. 전부터 들고 다니던 가방은 색도 바랗고 헤져서 거슬렸기 때문이다. 깔금하고 세련된 서류가방에 멋진 수트는 신사들의 로망이 아니던가. 하지만, 특별히 비싼 돈을 들여 가방을 구입해본 적이 없는 남자는 선뜻 거금을 들여 가방을 구입하는게 망설여졌다. 물론, 언뜻봐도 명품가방이 폼도 나고 멋지기는 한데 가격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이들면서 사람이 좀 깔끔할 필요가 있겠다 싶은 남자는 아내에게 생일 선물로 좋은 가방을 사달라고 했다. 털털한게 고맙기도하지만 늘 털털한 남편이 답답했던 아내는 잘 생각했다며 백화점에서 가방들을 둘러봤고 메이커 손가방.. 더보기
21 시장에서 길을 잃다 제목: 시장에서 길을 잃다. 80년대 초반 시장에는 언제나 사람이 많았다. 요즘처럼 마트가 없던 시대라 온갖 물건들을 한꺼번에 보려면 시장으로 가야했다.게다가 가격도 싸서 언제나 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꼬마는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가는게신났다. 사람 많은 시장은 왠지 축제같고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자주 가던 시장말고 다른 시장으로 갔다. 꼬마는 처음 가보는시장이었지만, 새로운 곳을 간다는 설레임까지 더해져 신났다. 어머니는꼬마의 손을 잡고 붐비는 인파들속을 헤짚으며 이곳 저곳 매대들을 기웃거렸다. 시장을 돌아다니는 어머니들은셰퍼트같다. 예민한 후각을 동원해 자신이 찾는 물건을 찾아내고야마는 셰퍼트. 엄마는 번득 번득 부지런하게 이곳저곳을 뒤져가면서도 한 손으로 억센 장난꾸러기 .. 더보기
20 막현이 막현이 막현이는 40대 들어서면서 더 자주 만나게 된다. 늘 걱정이 많고 의심이 많은 막현이는 소극적이면서도 비관주의자이다. 막현이는 40대 후반에는 딱히 할게 없다며 한숨이다. 특히,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어떤 경력으로 도움이 되겠냐고 깐죽거리기도 즐겨한다. 어차피 50을 지나고 60을 지나면 경력이라는 것자체가 큰 의미가 없을텐데, 지금 그렇게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면 되겠냐고 잔소리다. 그래서 이것저것 어떻겠냐고 하면 어느 것 하나 속시원한 답변은 없고 이래서 안된다 저래서 안된다 일쑤이다. 넉넉하게 모아논 재산 하나 없는 중년은 얼마나 비참할 것인지, 국민경제와 인구절벽이 가져오게 될 암담한 미래는또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하루에도 몇번이나 중얼거리는게 일이다. 누구는 그걸 몰라서 그러나, 대비하고 .. 더보기
19 짠한 사람들 짠한 사람들 아들은 오랫만에 어미 아비를 찾아 저녁을 먹기로 했다. 수원에 사시면서도 자주 찾아뵙지 미안함에 아들은 날을 잡았다. 마침 전해드려야할 것이 있어서 찾아 뵙겠다고 하니 어미는 오지 말라고 한다. 어미가 오지 말라고 하는 이유를 잘 아는 아들은 잠깐 들리면 될 일이고, 어차피 저녁도 먹어야 할터이니 가겠다고 한다. 어미는 기왕에 올거면 수원역에서 내려 택시타고 오라고 한다. 아들은 수원역에서 전철로 화서역까지 가고 걸어서 10-15분정도면 가는 어미의 집을 굳이 택시를 타고 갈 마음이 없다. 어미는 다시 전화를 해서 택시타고 와 버리라고 한다. 어미는 ‘버리라’라는 단어를 종종 사용한다. 그 단어안에는 어미의 단호함이 베어있다. 이도 저도 못하는 마음의 균형이 깨질때,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것으.. 더보기
18 가짜 가짜 평소 같이 밥을 먹기 힘든 최고 보스가 비서들과 함께 밥을먹자고 한다. 사내 정치에 관심 많은 사람이야 좋아할 일이지만, 정치에별로 관심없는 나로서는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의미없는 미소도 지어야 하고 보스의 기분도 맞춰야 하니그게 어디 맘편히 밥먹는 자리이겠는가. 여의도 어느 고급 일식집에서 밥을 먹었다. 뭐, 내 돈 주고야 올리도 없는 비싼 식당이니, 보스덕분에 왔다. 고급스런 식당분위기에 깍듯한 인사, 정성스런 서빙등 그리고 기가막힌 맛까지 어느 하나 빠지는데가 없는 식당이었다.그런 의전자리가 익숙한 보스는 겸손하면서도 당당하게 인사를 받았고 덩달아 동행한 우리 일행도 같이 동일한 대우를 받았다. 가격을 보면 누구나 쉽게 오기 쉽지 않으니 식당으로써도 사람들을 필터링할 필요도 없을 것같았다. .. 더보기
17 불편한 영화 ‘보통사람’ 영화를 봤다. 예전에는 영화를 하루에 한편 많게는 두편씩도 보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영화는 언제나 여가시간에 우선순위이기는 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영화가 조금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보통사람’ 영화도 불편했다. 싸구려 감성을 자극해서도 이야기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서도 아니다. 영화가 언제부턴가 대중의 묘한 부채감을 해소시켜주기 때문이다. ‘보통사람’은권력을 감시하고 권력을 견제하는건 누구의 몫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보통사람들은 부패한 권력에 의해 힘없이 착취되는 대상이다. 하지만, 보통사람이 자신을 지키는 힘은 스스로 깨어 뭉칠 때이다. 사실 ‘보통사람’이라는 영화 제목만으로도 이미 어떤 이야기일지 짐작하는게 어렵지 않다. 구성은 진부하고 스토리는 뻔하다. 그럼에도 현실에 대한 .. 더보기
16 화장실이 술집 화장실이 술집 군산가는길에 어느 휴게소에 들려 화장실을 이용했다. 화장실이 정말 예뻤다. 심지어는 샤워실까지 갖추고 있는 휴게소였다. 이쁘게 잘 만들어놓은 화장실에서 볼일을보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사실, 경부선을 타고 가다보면 어느 휴게소는 화장실내에 카페같은 인테리어를 만든곳도 있다. 스마트폰을 충전도 할 수 있고 앉아서 책을 볼 수도 있다. 왠만한 집 화장실보다 더 청결하고 아기자기 했다. 공중화장실이라는게 우리의 인식속에는 언제나 불결하고 불편한 곳이었는데, 언제부턴가 그 화장실이 아주 세련되게 바뀌었다. 물론, 대다수의 공중화장실이 다 그런건 아니겠지만. 그런데, 조금 비뚤어지게 보고 싶은 생각이 뭉실거렸다.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화장실을 이렇게 꾸미는 이유가 뭘까? 왜 사람들은화장실을 이렇게 .. 더보기
15 미디어는 왜 변화는가 미디어 환경이 변하고 있다. 단순히 기술진보때문이 아니다. 개인과 집단의 사고체계가 전환되고 있다. 뉴미디어의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플랫폼에 대한 개념정리가 진행중이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레거시’ 개념의 플랫폼 - 라디오나 tv같은 - 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전통 미디어 개념조차 사라지는 시대가 도래할 것인가. 전자는 보수적인 접근이다. 요즘 유행하는 스낵 영상은 파편화 되어 있어서 본 영상에 대한 요구는 필수불가할 것이라고 본다. 영상을 제작하는데 있어서도 ‘스낵영상’을 위한 제작 호흡과 긴호흡을 바탕으로 하는 ‘오리지널’ 컨텐츠 제작은 다르다고 본다. 긴호흡으로 만들어지는 영상은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강점이 있다. 광고에도 유리하다. 그리고 그 ‘오리지널’ 영상은 다양한 에피소드들.. 더보기
14 검은개 짖던날 2화 검은개 짖던날 2 남자가 지냈던 시골은 깊은 골짜기에 있어서 ‘굴’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광굴’이라 이름지은 동네이다. 그중에서도 할아버지 집은 마을 거의 끝자락산중턱에 있었다. 물도 나오지 않아 아래로 한참을 내려가 동네 우물에서 물을 길어와야만 하는 곳이었다. 가끔 수도에서 물이 나오는 반가운 때가 있기도 했지만, 늘상은 삼촌이나고모부, 아버지가 물동이로 물을 져 날라야 했다. 오죽하면그런 시골이 싫어서 남자의 아버지는 야밤에 도주를 했을까. 시골은 명절이 되면 그나마 사람이 많아지니 재미라도 있었지만, 평소에는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남자는 6살때 이 시골에서 몇개월을 지냈다. 이제 3살이 되어가는 둘째를 키우기 힘들었던 남자의 부모는 남자가 6살때 전라도 산골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몇개.. 더보기
13 검은개 짖던날 1화 검은개 짖던날 남자는 검은개 짖는 소리에 잠을 깼다. 새벽3시. 검은 개 한마리가 불쑥 잠자리에 올라왔다. 왼쪽으로 몸을 돌리고 오른쪽으로 뒤척이며 무시하려 애써보지만, 검은개 짖는 소리가 점점 크고 선명해진다. 오늘은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푹자야 하는데, 새벽 3시에 잠을 깼으니 이만저만 속상한게 아니다. 애써 다시 잠을 청한다고 해도 30분은 족히 넘을테니 불과 1시간여밖에 잠을 잘 수가 없다. 남자는 차라리 시계를 보지 말걸 그랬다 생각했다. 시계를 보지 않은채 지금이 새벽 4:40분이라고 생각을 하면 시간은 그렇게 정해지는게 아니겠는가. 자신을 속일 수 있었을텐데, 몸이 보통 영약한게 아니다. 기어코 지금이 몇시인지를 알아내고, 충분히 잠을 자지 못한 대가가 어떨것인.. 더보기
12화 안경 안경 나는 평생 사각테안경을 써왔다. 고등학교 1년때부터 무테, 반무테, 뿔테등만 썼지 동그란 안경은 단 한번도 써본적이 없다. 왜 사각 안경을 그렇게 고집했는지는 모르겠다. 텔레비전에서 보았던어느 배우가 인상적이어서 그랬던것인지 아니면 어릴때 보던 사각 안경테가 멋있게 보여서 그랬던 것인지. 가끔안경점에서 동그란 안경테에 시선이 가기도 했지만, 한번 써보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때 두꺼운 안경을 쓰는 친구가 있었다. 안경을 쓰게된 이유를 얘기해주는데, 자신은 안경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안경을 쓰기에는 시력이 너무 좋아서 고민을 하다가 어느날운동장에서 태양을 바라봤다고 한다. 한참을 보고 사물을 보니 온통 빛만 보이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고한다. 그게 재미있기도 하고 그렇게 하면.. 더보기
11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40대이면 생각하던게 있었다. 일단 머리를 기르는 것이다. 개인에게있어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만큼 사회적검열이 있을까. 때가 되면 머리가 지저분해 보여서 잘라야 한다고 미장원을 찾는다. 물론, 미용을 목적으로 이용하는 여자분들이야 그렇지는 않지만, 사실 남자들은 그게 영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사회가 개인에게 멍에처럼 메어놓은 검열중 하나가 정해놓은 머리를 한없이 기르는거라고 생각을 했다. 더구나남자가 그렇게 기른다는 것은 여전히 일상적이지 않다. 수염은 잘 모르겠다. 사실 수염은 본인이 더 불편해서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수염도 외국에나오는 털많은 사람처럼 멋지면 모르겠는데, 이건 뭐 이방정도 수준이라면 차라리 기르지 않는게 낫겠다싶다. 머리를 기르.. 더보기
10화 조직은 어떻게 망하는가 조직은 어떻게 망하는가조직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척도는 소통이다. 박근혜 파면의 본질중 하나는 그녀가 결코 누구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듣지 않는다기보다 듣고 싶은 이야기만을 들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자신의 생각에 반하거나 자신의 뜻과 다른 이야기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았다. 2015년 국회법 개정안을 거부했던 당시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배신’이라는 아이콘을 붙여버린 것이 어쩌면 일반 국민들이 그녀의 실체를 들여다볼 수 있었던 한 단면이었을 것이다. 탄핵으로부터 파면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보면 그녀 주변에는 소위 ‘태극기 집회’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녀가 이 지경까지 왜 오게되었는가 본질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니었을까 싶다. 맹목적인 그녀의 추종세력들이 그녀로 하여금 자신을 더욱 확증.. 더보기
9화 몸살 몸살 마음은 포로이다. 영락없는 인질이다. 상채기가 나서 긁힐때, 지독하게 아프고서야 몸과 마음은 분리된 것임을자각하게 된다. 거울앞에서 자신을바라보면 낯설 때가 있다.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분리. 육신으로 부터 가끔 생기는 틈. 누가 주인이냐에 따라 거울에 있는 저 사람은 다른 말을 하고 다른 행동을 할터. 전기자극처럼 육신이 불편해지는 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낯설음을 자각하게 된다.배를 곯을때는 부지런히 채워야 하는 것들로 마음은 인질이 되고, 사랑을 목말라할때는 사랑을채우기 위해 몸은 앙탈이다. 하지만 속절없이 몸이 불편해지고서야 기운없는 육신이 인질범임을 알게된다. 사고는 육신의 방안에서 자유로울 뿐이다. 이른 새벽 흔들리는전철안에서 여러 노인들이 멍하니 공간을 응시한다. 젊은 사자는 늙은 우리에서 .. 더보기
8화 높이뛰기 제목: 높이뛰기 학생시절 친구들과 제자리에서 계단을 누가 더 많이 뛰어오르나 시합을 했던 적이 있다. 운동을 한 친구가 5칸인가를 제자리에서 뛰어올랐다. 상당한 높이였다. 딱 눈대중으로 봐도 거기가 커트라인 같았다. 사람의 눈대중이라는게 익숙한것에 길들여져 있어서 첫눈에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바로 결정해주지 않던가. 5칸이 최상이라는 느낌이었다. 내가 뛸 차례였다. 이기고 싶은 마음에 6칸을 뛰어오르겠다고 생각을 했다. 근데 5칸을 제자리에서 뛰어오르기도 사실 조금 벅차보였는데 6칸은 확실히 쉬운게 아니다라는 긴장감이 들었다. 방법이 없을까. 일단 문제는 보이는 것이었다. 눈앞에 6칸은 불가능해 보였다. 더구나 운동을 한 친구조차 거기까지는 못가지 않았는가. 자꾸 두려운 마음을 추스리려면 .. 더보기
7화 정글 제목: 정글 마트는 정글같다. 온갖 육식동물들이 사냥감을 찾아 눈을 번득거린다. 요란한 카트소리는 배고픈 짐승의 배곯는 소리같고, 비어있는 거대한 위장처럼 카트는 이제 사냥할것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포만감에 기분 좋아보인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의 카트에는 뭐가 담겨있나기웃거리며 자신의 먹이를 가늠도 해본다. 오고가다 부딪히는 다른 카트는 배고픈 욕망을 더욱 자극해 괜시리 짜증스러워 으르렁 거리게 한다. 식품 코너로들어가는 입구에는 오늘이 처음인 것같은 앳된 아가씨가 아이들용 스틱 아이스크림을 판매하고 있다. 여느 식품코너처럼 시식용으로도 스틱 아이스크림을 잘라주고 있다. 시식용 아이스크림은 놓기가 바쁘게 사라져 버린다. 자기 앞에서 먹을 것이 내려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조용히 날개짓 한번 하지 않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