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천일 에세이

19 짠한 사람들

짠한 사람들

 

아들은 오랫만에 어미 아비를 찾아 저녁을 먹기로 했다. 수원에 사시면서도 자주 찾아뵙지 미안함에 아들은 날을 잡았다. 마침 전해드려야할 것이 있어서 찾아 뵙겠다고 하니 어미는 오지 말라고 한다. 어미가 오지 말라고 하는 이유를 잘 아는 아들은 잠깐 들리면 될 일이고, 어차피 저녁도 먹어야 할터이니 가겠다고 한다. 어미는 기왕에 올거면 수원역에서 내려 택시타고 오라고 한다. 아들은 수원역에서 전철로 화서역까지 가고 걸어서 10-15분정도면 가는 어미의 집을 굳이 택시를 타고 갈 마음이 없다. 어미는 다시 전화를 해서 택시타고 와 버리라고 한다. 어미는 버리라라는 단어를 종종 사용한다. 그 단어안에는 어미의 단호함이 베어있다. 이도 저도 못하는 마음의 균형이 깨질때,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것으로 마음이 기울어질때, 못내 미안해 하는 자신의 마음을 떨쳐버리고 싶을때 버리라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어미는 다 큰 아들을 우리아들 왔는가라고 반긴다. 평생 표현에 낯선 애비조차도 아들에게는 , 우리 아들 왔는가라고 웃는다. 웃는게 어색하고 표현하는게 낯선 애비의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알기에 아들은 못내 마음이 짠하다. 어미와 애비가 자신의 속깊은 감정의 속살을 드러내보일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 아들이다. 언제 누구에게 보고싶다라는 말을 사용해 보고 아들이 시키는대로 포옹이라도 해보겠는가. 아들은 어미와 아비에게 언제나 착하고, 보아도 보고싶은 존재이다. 그런 존재에게 오랜 시간 벽처럼 쌓여진 묻혀진 단어들이 서슴없이 나온다. 

 

어미는 아들이 좋아하는 불쭈꾸미를 준비해 놓았다. 얼마전에 얻어놓은 드룹도 잘  데쳐서 먹기 좋게 초장과 함께 준비했다. 아들은 두분만 사는 집이 적적해 못내 어미와 아비가 측은하고, 어미와 아비는 충분히 뒷바라지 못해주었다는 마음의 빚을 갖고 산다. 세사람이 오랫만에 저녁 식탁을 마주한다. 아들은 어미가 해준 음식솜씨를 칭찬하느라 여념이 없고, 어미는 그런 아들 밥앞에 이것 저것 반찬들을 들이민다. 마른논과 자식 입속에 들어가는 먹을게 세상에서 제일 보기 좋다고 하던가. 그건 나이와 상관없다. 두 공기나 먹어대는 아들을 보는 것만큼 행복한 것이 있을까, 그러다가 배나온 아들의 비만이 걱정이라 뱃살 빼야한다고 또 걱정이다. 어미의 근심은 아내가 하는 근심과는 깊이가 다르다. 해줄게 별로 없어진 어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마음을 전해주는 일뿐이다. 말솜씨 없는 애비는 그냥 옆에 계속 서있는다.

 


식사가 끝나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애비는 아들이 서울로 돌아갈 기차시간에 조바심이다. 족히 40분전에 나서면 될일을  애비는 1시간전부터 재촉이다. 딱히 할말이 없는 애비는 조금이라도 빨리   한다는 절대명제가 생겼다. 연신 빨리 가서 쉬라한다. 한이야기 또 하고 또 한다. 그런 애비가 어미는 못내 서운해 자기가 알아서 할 일이라며 핀잔을 준다. 애미는 아들이 가서 빨리 쉬기를 원하면서도 조금이라도 아들이 더 보고싶다. 애비는 그런 어미마음을 알면서도 다시 시계를 쳐다본다. 딱히 할말 없는 애비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들이다. Tv를 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아들은 1시간전에 일어선다. 그리고 용돈 조금을 어미 손에 쥐어준다. 받기 싫다는 어미의 표정은 진심이다. 혼자 서울생활하는 아들에게 무어라도 해주고 싶은 애미마음인데 해줄게 없다. 그런 아들에게 아들이 좋아하는 저녁을 준비한 것만도 기분좋은 일인데, 아들이주는 용돈을 받고 싶지 않다. 저녁을 사드리고 싶었던 아들은 내일 저녁에 아비랑 맛있는거라도  사 드시라고 했지만, 어미는 한사코 거절이다. 아들은 넉넉하게 드리지못하는 용돈에 마음이 짠하다. 할 수만 있으면 그것에 10배를드려야 하는데, 아들도 요즘 사정이 좋지가 않다. 지출해야할곳이 너무 많다. 주는 아들도 죄송하고 받아야 하는 어미도 미안하고.돈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아들은 어떻게 하면 어미가 돈을 받을지 안다. 돈을 방구석에던져넣고는 웃으면 된다.

 

아비는 이미 모자를 쓰고 나갈 채비다. 아비는 아들이 가는 길을 동행하려고 한다. 이번에는 밤늦으니 택시를 태워보낼 요량이다. 아들은 그런 아비의 마음을 알기에 택시가 아니고 걸어간다고, 운동삼아 걸어야만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래도 아비는 들은체만체 먼저 현관을 나선다. 아비의 고집을 잘 아는 아들은 어떻게 하면 아비를 금방 돌려보낼지도 안다. 절대 굴하지 않으면 된다

 

택시를 태우려는 아비에게 아들은 한사코 걸어갈거라며 먼저 반대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하는 수 없이 아비는 그런 아들을 보낸다. 한참을 가고 뒤를 돌아보면 아비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다. 손 한번 흔들어 주고 다시 한참을 가다 다시 뒤를돌아보면 어렴풋이 노인 한분이 여전히 이쪽을 보고 있다. 기어코 시야에서 사라질 때가 되서야 아비가 보이지 않았다.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아들 착한 아들이라고 부르는 어미와 아비는 아들이 짠하기만 하다. 두 노인분만 다시 남을 시간을 생각하니 아들도 마음이 짠하다.

'천일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21 시장에서 길을 잃다  (0) 2017.04.22
20 막현이  (0) 2017.04.22
18 가짜  (0) 2017.04.18
17 불편한 영화  (0) 2017.04.17
16 화장실이 술집  (0) 2017.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