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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 에세이

21 시장에서 길을 잃다

제목: 시장에서 길을 잃다.

 

80년대 초반 시장에는 언제나 사람이 많았다. 요즘처럼 마트가 없던 시대라 온갖 물건들을 한꺼번에 보려면 시장으로 가야했다.게다가 가격도 싸서 언제나 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꼬마는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가는게신났다. 사람 많은 시장은 왠지 축제같고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자주 가던 시장말고 다른 시장으로 갔다. 꼬마는 처음 가보는시장이었지만, 새로운 곳을 간다는 설레임까지 더해져 신났다. 어머니는꼬마의 손을 잡고 붐비는 인파들속을 헤짚으며 이곳 저곳 매대들을 기웃거렸다. 시장을 돌아다니는 어머니들은셰퍼트같다. 예민한 후각을 동원해 자신이 찾는 물건을 찾아내고야마는 셰퍼트. 엄마는 번득 번득 부지런하게 이곳저곳을 뒤져가면서도  한 손으로 억센 장난꾸러기 꼬마의 손을 단단히 움켜잡았다. 엄마 손에 꼭 잡힌채 꼬마는 신기하기만한 시장 여기저기를 둘러보느라 여념이 없다. 사람이라도 적으면 그나마 한가하고 재미난 구경거리일텐데, 오고가는인파들에 묻혀서 이리저리 휩쓸리니 여간 귀찮은게 아니다. 그래도 뭔가 들뜬 시장 분위기는 그마저도 재미있다. 사려고 하는 물건을 발견한 엄마는 꼬마에게 움직이지말라 하고 두 손으로 이것 저것 물건들을 뒤적이며 주인아주머니와흥정을 시작한다. 엄마옆에 선채로 한결 자유로워진 꼬마는 반대편쪽에 삐죽 보이는 좌판을 본다. 뽑기도 있고, 동그란 판을 돌려서 해당되는 선물을 가져가는 게임도있다.  꼬마는 엄마 한번 보고좌판 한번 보고 조금씩 좌판쪽으로 다가가더니 결국 다른 사람들 옆에 한 자리를 차지했다.  밀물과 썰물처럼 사람들이 오가는 사이에도 좁은 틈바구니에 자리를 잡은 꼬마는연신 신이 났다. 별모양 뽑기를 만들어내는 아이와 함께 긴장감에 마른 침을 삼키고, 동그판 판을 돌리면 꽝이 나올지 상품이 나올지도 초조함에 몸이 달았다. 번호를 잘만 배열하면 설탕과자를 맞출것 같은데, 막대 한띠만 30번대에다 놓으면 걸릴것 같은데 그러다가도 그 번호가 꽝이 되면 머쓱해진다. 그래도 예측할 수 없는 다음 순서를 생각하니 짜릿하기만 하다. 게다가 주인 아저씨의 입담은 또 어찌나 흥겨운지 덩달아 키득거리고 재미져 고개젖히고 연신 웃어댄다. 돈만 있으면 해보고 싶지만, 그래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여간 신나는게 아니다. 더구나 아저씨는 아까부터 구경하고 있는 꼬마에게 인심좋게 뽑기과자도 주었으니 이게 여간 수지맞는 일이 아닐수 없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인파의 파도가 서서히 잦아들고 좌판에 사람들도 줄기 시작하고서야 꼬마는 엄마가 있던 곳을 돌아봤다. 엄마가 없다. 급히 엄마가 있던 곳으로 달려간 꼬마는 근처 어디에도 엄마가 없다는 것을 알고서야  큰일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있던 시장은 북적이는 사람들로 귀찮기는 해도 엄마손만 꼭 잡고 있으면 괜히 신나던 곳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고사하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시장 한복판은 이제 너무 낯설었다. 엄마가 없다는 불안함이 엄습해오자 모든게 불친절하게 느껴졌다. 이리로들어오라고 웃음짓던 만두가게도 푸지게 웃어대던 야채가게도 무서워졌다. 엄마를 찾아야겠는데, 처음 온 시장이라 어디로 가야할지 자신이 없었다. 무작정 걸어보는 꼬마는 멀리 못가 다시 돌아왔다. 처음와본 골목을 미로처럼 들어갔다 더 낯선 곳에 남겨질까 두려웠다. 뽑기를 하던 좌판 아저씨가 괜히 원망스러웠다. 이제 꼬마에게 익숙한 곳은 지금 서있는 자리, 기억속에 가장 익숙한 자리는 엄마와 잠깐 같이 있던 이 자리뿐이었다. 분명 시장을 벗어나면 익숙한 거리가 나올 것만 같은데 이곳은 다이달로스의 미로였고, 엄마에게 연결된 실뭉치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저쪽 건너편에 엄마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보려고 하지만 더 낯선 곳에 남겨지게 되면 그때는 최소한의 희망과 안정감마저 사라질게 분명했다. 이만큼은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다시 꼬마를 끌어당겼다. 엄마에 대한 기억이 유일한 이 자리가 유일한 빛 한줄기였다. 당황스럽고 오싹하게 찾아오는 두려움에 마음이 깜짝 깜짝 놀래도 꼬마는 울지 않았다. 울어버리면, 모든것이 끝났고 집으로 갈 수 없고 혼자 버려지게 됐다는 통첩, 스스로게 내리는 마지막 선고가 될 것같았다. 그걸 확인하는게 두려웠다.

 


어눅 어눅 초저녁, 하나둘 가게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그렇게 신나던 뽑기좌판 자리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있지를 않다. 숨바꼭질하듯 모두 숨어버린 자리가 을씨년스러웠다. 그냥 그자리에 목놓아 엄마라고 소리 쳐볼까 싶기도 했지만, 자신이 없다. 누군가 주인없는 꼬마를 알아보고 이게 웬 떡이냐 낼름 업어갈 것만 같았다. 누군가 관심갖고 바라봐주기를 바래보지만, 무슨 짓이라도 당할까봐 사람들의 무관심이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울어도 안되겠지만 당황스러워 해서도 안될 일이었다. 엄마잃은 주인없는 강아지라는 인상을 줄것 같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불안감이 솜사탕처럼 커져만 갔다. 엄마는 원래 없던 것일까. 엄마와 있었던 기억은 꿈이었고, 이제서야 현실로 돌아온게 아닐까. 마음은 벌써 자기 살겠다고 환경에 익숙해지려 한다. 아는 누군가라도 제발 나타나주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라도 , 너왜 여기있니라고 말을 걸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게 너무 불친절해지고 냉랭해졌다. 말을 걸어보려해도 대꾸도 없고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잡아먹을 것만 같았다. 감정이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양동이로 받아놓은 빗물이 차고 넘치듯, 통제되지 않는 감정들이 마음을 채우고 넘치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울어야 할 것같다.울수밖에 없을 것같다. 울면 얼마나 절망적인지 자기에게 확인시켜주겠지만, 무서운 이 침묵을 더이상 견뎌낼 방법이 없었다. 더이상 마음을 담아내는게 어려웠다. 

 

여기있었네..어디있는지한참 찾았잖아. 이녀석아

꼬마는 친밀한 목소리와 함께 엉덩이에 익숙한 손맛을 느꼈다. 순간, 언제 그랬냐는듯 모든 것들이 친절하고 환하게 웃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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