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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 에세이

14 검은개 짖던날 2화

검은개 짖던날 2

 

남자가 지냈던 시골은 깊은 골짜기에 있어서 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광굴이라 이름지은 동네이다. 그중에서도 할아버지 집은 마을 거의 끝자락산중턱에 있었다. 물도 나오지 않아 아래로 한참을 내려가 동네 우물에서 물을 길어와야만 하는 곳이었다. 가끔 수도에서 물이 나오는 반가운 때가 있기도 했지만, 늘상은 삼촌이나고모부, 아버지가 물동이로 물을 져 날라야 했다. 오죽하면그런 시골이 싫어서 남자의 아버지는 야밤에 도주를 했을까.

 

시골은 명절이 되면 그나마 사람이 많아지니 재미라도 있었지만, 평소에는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남자는 6살때 이 시골에서 몇개월을 지냈다. 이제 3살이 되어가는 둘째를 키우기 힘들었던 남자의 부모는 남자가 6살때 전라도 산골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몇개월을 맡길 수 밖에 없었다. 남자를 키운건 할아버지와 할머니인데, 정이라는게 그닥 있지 않은 분들이었다. 당신들편안한거나 안위가 먼저이지 지금처럼 손자라면 끔찍해 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과는 달랐다. 심지어 밥을 깨작거리는 흔한 6살 꼬마아이의 머리통을 수저로 때리면서 니미럴이라는 욕설도 심심찮게 던지는 분들이었다. 어쩌면 시골의 그 적막함보다 더 싫었던건 할아버지 할머니의 그 무관심이었는지도 모른다.

 

초저녁이 되면 개짖는 소리와 함께 시골은 적막에 휩싸인다. 땅거미조차 그 적막함에 진절머리를 내며 어둠속으로 후다닥 도망을 가버린다. 동네여기저기서 컹컹 짖어대는 동네 개들의 소리는 시커먼 산이 짖는 소리같았다. 초저녁이 되면 꼬마는 냇가가 있는 아래까지 내려간다꼬마에게 산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자리이다꼬마는 저 산속에 혼자 버려지기라도 하면 어떨까 생각할때마다 두려움에 몸서리가 쳐졌다. 혼자 시골에 남겨지게 된 꼬마는 이유를 몰랐다. 그저 엄마와 아빠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절망이었다. 특히나, 시골의 초저녁은 그런 꼬마에게는 무지막지한 폭력이었고, 거칠게 할퀴고 아프게 후려치는 몽둥이질이었다. 아직 어둠이 빛을 다 삼켜버리지 않은 시각, 여전히 소망이 생존하지만 이제 마지막임을 알리는 시각, 초저녁은 꼬마에게 조급한 간절함이었다. 시커멓게 두눈 부릅뜨고 있는 거대한 앞산을 바라보며 6살 꼬마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엄마라는 말뿐이었다. 혼자 웅얼거리는 어린 짐승마냥 입술언저리에서 간질거리는 엄마라는 말을 해대면 엄마가 올것만 같았다.  간절하면 시꺼먼 산이 엄마를 보내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산은 단 한번도 꼬마에게 친절한 적이 없었다. 아무것도 허락할 수 없다는 엄위한 공포가 얼굴에 가득할 뿐이었다. 다시 익숙한 절망과 슬픔이 꼬마의 등을 떠밀때에야 깊은 밤 할아버지 할머니 집으로 향해야 했다. 그리고 다시 다음날 또 다음날, 초저녁이 되면 간이 녹아내리듯 간절함으로 꼬마는 다시 산앞에 섰다. 산너머가 바로 엄마가 있는 동네인것만 같았다. 산이 엄마가 오지 못하도록 길을 막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자비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시커먼 산앞에 그토록 간절하게 두손모아 사정을 해보아도 산은 으르렁 대다 꼬마의 두손을 덥석 물어 뜯어버렸다. 

 


남자는 결혼전까지 우울감에 시달려야 했다. 까닭없는 우울감은 언제나 뒷덜미를 끌어당겨 그 자리에 주저앉혀 버렸다. 친구들과 신나게 놀던 오후가 지나 초저녁이 되면 무너지는 마음을 추스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원인을 찾지못하니 고스란히 감정의 소낙비를 다 맞아야만 했다. 분리되는 것에 대한 우울감은 두려움을 키워냈고, 두려움은 어린 꼬마의 절망을 먹이로 남자안에서 괴물처럼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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