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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 에세이

13 검은개 짖던날 1화

 검은개 짖던날 

 

남자는 검은개 짖는 소리에 잠을 깼다. 새벽3. 검은 개 한마리가 불쑥 잠자리에 올라왔다. 왼쪽으로 몸을 돌리고 오른쪽으로 뒤척이며 무시하려 애써보지만, 검은개 짖는 소리가 점점 크고 선명해진다. 오늘은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푹자야 하는데, 새벽 3시에 잠을 깼으니 이만저만 속상한게 아니다. 애써 다시 잠을 청한다고 해도 30분은 족히 넘을테니 불과 1시간여밖에 잠을 잘 수가 없다. 남자는 차라리 시계를 보지 말걸 그랬다 생각했다. 시계를 보지 않은채 지금이 새벽 4:40분이라고 생각을 하면 시간은 그렇게 정해지는게 아니겠는가. 자신을 속일 수 있었을텐데, 몸이 보통 영약한게 아니다. 기어코 지금이 몇시인지를 알아내고, 충분히 잠을 자지 못한 대가가 어떨것인가 설레발을 편다.

 

검은개 짖는 소리가 점점 커져간다. 분해서 어쩌지를 못하겠다고 사납게 짖어댄다. 햇살 좋은 날 사진처럼 기억 하나 하나가 또렷이 살아난다. 그렇게 당하고만 있어서는 안되었던 것이다. 자존심 상하게 바보같이 대응하고 말았다. 반드시 복수를 했어야 했다. 늘 그렇게 먼저 공격을 하지 못해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이 아닌가. 그놈의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성격을 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검은개가 컹컹짖어댄다. 그 사람을 박살냈어야 했다. 늘 수동적으로 들어준다는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게 얼마나 미련한 짓이었던가. 밀고 밀리는 신경전에서 먼저 기선을 제압하지 않으면 당하는걸 알면서 왜 늘 그렇게 공격적이지 않았던가. 그냥 쌍욕이라도 한바가지 해줄 걸 그랬던거다. 할 수만 있었으면 귀싸대기라도 때릴걸 그랬다. 한번 정도는 귀싸대기가 됐건 주먹질이 됐건 날려줄걸 그랬다고 남자는 생각한다. 가슴이 두근 두근거린다. 아니다 오늘 출근하면서 자동차에 치어버리는 것도 괜찮지 않겠나 싶다. 불구가 돼 절룩 절룩 거리면서 독선적인 그놈의 몸뚱아리에서 연민이 우러나올만큼 눈물을 흘리는 것도 괜챃지 않을까. 창살을 부숴버리고 튀어나온 검은개가 남자의 팔을 물고 다리를 물고 몸뚱아리를 물어대고는 사납게 몸을 흔들어댄다. 보통 피곤한게 아니다. 남자는 도통 검은개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 옆에 자는 아내의 몸을 깊이 끌어안아 보아도 검은개는 잠들 생각이 없다. ‘벌렁 벌렁놀란 심장이 뛰어대는 통에 남자는 몸까지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그날 낮에 남자는 검은개를 부르지 않았다. 그런데 전혀 생각도 못한 날에 그것도 깊은 새벽에 찾아와 이리도 사납게 짖어대는 것이다. 차라리 그냥 일어날까 싶어도 차라리 그냥 누워 있으면 몸이라도 편할지 몰라 남자는 그냥 눕기로 한다. 그러고 보면 검은개는 없는게 아니었다. 남자에게는 언제나 검은개가 마음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을뿐이었다. 뭐든지 처음 것에 심한 낯가림이 있는 남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향이 있다. 감정이 유린당한다고 생채기가 난 날에는 마음이 여간 고약한게 아니었다. 반드시 복수를 하거나 대가를 지불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남자의 성격상 낯가림은 검은개가 자라기에 더할 나위없는 환경이었다. 그런 낯가림이 언제나 피곤하고 불편한 남자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당하고야 말았다. 그게 자기 자신의 문제이고, 오해일 수 있다고 달래보아도 검은개만 더 약올리는 격이었다.


수면아래 잠자던 감정을 확인하는 날에는 한동안 검은개가 계속해서 뒤를 졸랑 졸랑 따라붙는다. 그놈을 보게 되는 날에는 옆에서 흰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며 당장이라도 물채비를 한다. 누구든 옆에서 또 건드리기만 해보라고 사납게 이를 드러내 보인다. 남자는 그렇게 한 시간여를 뒤척인 끝에 비척대며 일어선다. 검은개 한마리가 뒤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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