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높이뛰기
학생시절 친구들과 제자리에서 계단을 누가 더 많이 뛰어오르나 시합을 했던 적이 있다. 운동을 한 친구가 5칸인가를 제자리에서 뛰어올랐다. 상당한 높이였다. 딱 눈대중으로 봐도 거기가 커트라인 같았다. 사람의 눈대중이라는게 익숙한것에 길들여져 있어서 첫눈에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바로 결정해주지 않던가. 5칸이 최상이라는 느낌이었다. 내가 뛸 차례였다. 이기고 싶은 마음에 6칸을 뛰어오르겠다고 생각을 했다. 근데 5칸을 제자리에서 뛰어오르기도 사실 조금 벅차보였는데 6칸은 확실히 쉬운게 아니다라는 긴장감이 들었다. 방법이 없을까. 일단 문제는 보이는 것이었다. 눈앞에 6칸은 불가능해 보였다. 더구나 운동을 한 친구조차 거기까지는 못가지 않았는가. 자꾸 두려운 마음을 추스리려면 보지 않는게 좋을 것같았다. 그러려면 눈을 감아야 했다. 대충 6칸 정도의 높이는 머리에 그려넣고 뛰는 순간 눈을 감아버리는거다. 못 올라가서 걸리면 아프거나 다치기 밖에 더하겠는가. 눈을 감고 뛰는 것에만 집중할 수있으니 어쩌면 올라가지 않겠는가. 몸을 앞뒤로 몇 번 흔든후에 6칸은 어느정도라는 감으로 눈을 감고 힘껏 뛰었다. 보이는게 없으니 힘을 모으고 집중하는데는 그만이었다. 6칸을 뛰어올랐다. 성공이었다. 친구들의 탄성이 터졌다. 6칸은 대충 보기에도 쉽게 제자리에서 뛰어오르기 불가능해보였는데, 운동도 하지않는 내가 뛰어올랐으니 말이다.
젊은 직원 하나가 그만둔다. 어떨때는 꿈을 찾아 자기 자리를 박차는 직원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자기에게 제공되는 것들과 보이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울수 있다는 것은 특권이 아니던가. 젊다는건 사실 상대적이다. 누군가는 10년 어린 사람에게는 노땅이고 10년 많은 사람에게는 젊디 젊은 친구 아닌가. 자기 삶의 공식, 그 우상을 깨버리는 용기가 진짜 자기안에 신화를 깨우는게 아닌가.
거울앞에 서서 말없이 두 눈을 응시해본다.
(원고지 4.6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