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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 에세이

6회 달리기

달리기

 

달리기는 별로 좋아하는 운동이 아니다. 나는 상대가 있어서 힘을 모았다가 쓰는 운동을 좋아한다. 구기종목처럼 에너지를 모았다가 폭발시키는 데서 오는 희열을 잘 안다. 승부욕을 즐기는 것과는 다르다. 변화무쌍한 순간 순간들을 즐기는거다. 그래서 달리기는 그다지 좋아하지를 않는다. 반복적으로 하염없이 발을 내딛는것만큼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이 또 있을까. 물론, 한번에 빨리 끝내는 100미터 달리기는 좋아하기는 했지만, 오래 달리기는 아니었다. 그 시간에 재미있는 무언가를 하고말지. 그런데 오래달리기를 해보기로 했다. 왜 오래 달리기를 하려고 하는지 명확하지는 않았다. 별다른 자극없이 꾸준히 해야할 무언가가 생겨서 사전에 점검을 하고 싶기도 하고, 또는 달리기에 관해 쓴 어느 소설가의 글처럼 나도 내 소리를 좀 진지하고 오래도록 듣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초봄날씨는 워낙 쌀쌀맞아서 쉽게 정이 안간다. 그래도 달리기라면 역시 갑천이 제격이다. 갑천을 나와서 늘 대충 다녔던 MBC 사옥이 있는 방향이 제일 좋기는 하다. 길도 좋고 사람도 많기때문이다. 하지만 그 길과 반대방향으로 가기로 했다. 늘 산책이랍시고 걷기만 하던 곳이라 몸이 익숙해져서 쉽게 포기할 것같기 때문이다. 전혀 달려보지 않았던 정림동 방향으로 정했다.

 

처음부터 발이 무겁다. 내 종아리는 오래도록 지루하게 내딛는 달리기와는 거리가 멀다. 한번에 에너지를 모았다가 폭발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씨름선수같은 녀석이다. 천천히 쉬었다가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에너지를 뿜어내는 그 쾌감을 아는 녀석이다. 얼마전까지 죽자살자 하던 배드민턴 운동도 기억하고 있기에 몸이 근질근질 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런 녀석을 데리고 밋밋한 달리기를 하는 것이다.

 

몸은 500미터가 지나면서 달리기를 거부했다. 종아리가 아파왔다. 쥐가 나는 것같기도 하고 미세한 종아리 근육이 파열된 게 아닌가 겁도 났다. 하지만 전체 14킬로미터를 쉼없이 달리기로 마음을 먹었기에 조심조심 달래며 발을 내딛뎠다. 뒤꿈치부터 땅에 닿도록 달려도 보고 뒤꿈치가 거의 닿지 않게 앞꿈치로만 달리기도 했다. 그런 상태로 혼자 무료하게 달리다는건 쉬운 일이 아니다. 살랑 살랑 손을 흔드는 갈대들에게도 퉁명스럽게 눈을 흘기고 재잘거리며 앞서 걸어가는 남녀들도 괜히 얄밉다. 하지만, 제일 힘든건 나 자신이다. 차마 누구에게도 투덜거리지 못하는 온갖 소리를 나 혼자 들어야 한다. 나는 내 자신이 그렇게 수다스러울지 몰랐다. 무작정 달리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 설득도 하고, 운동이라면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아야지 무작정 다른 사람이 좋다고 흉내를 내는게 얼마나 미련한 짓이냐고 힐난도 하고, 뻣뻣한 다리를 들먹이며 겁도 주고, 게다가 저녁시간이라 배고파 죽겠다는  회유와 협박까지 나 혼자 다 들어야만 한다.

 


예전에는 황당한 만화들이 많았다. 구영탄시리즈 만화나 신이라 불린 사나이라는 만화를 특히나 좋아했다. 허술해보이는 주인공이 사실 천재적인 능력의 소유자인 것이다. 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자가 정말 만화같이 상황들을 제어하고 역전시키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그 만화들의 기억이 썩 유쾌하지가 않았다. 허무맹랑한 결과만 공상하는 습관이 생긴것 같았다. 지리한 반복과 노력은 공상의 대척점에 있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을 해보면 이 세상의 천재는 반복을 즐거워 하던 사람이 아니었던가. 마이클 조던이 배드민턴을 시작한다고 갑자기 이용대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용대는 얼마나 반복되는 일상의 연습을 견뎌냈던 것인가. 오래 달리기는 끈기와 관계있는 것이고, 그걸 못한다는 것은 어릴적 사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나쁜 만화때문이라는 억지까지 달리기는 가능하게 해줬다.

 

12킬로미터를 지나면서 통증이 서서히 사라졌다.  이것저것 아우성이던 몸이 단념했다는 것을 알았다. 수다도 줄어들었다. 그렇게 한번도 쉬지 않고 달린 끝에 처음 출발지에 도착을 했다. 14킬로미터를 달린 흔치않은 완주였기에 뿌듯했다. 터벅 터벅 집으로 가는동안 몸이 무겁다는걸 느꼈다. 해보지 않던 반복들로 잠자던 미세한 근육들이 깨어난 것같았다. 그건 묘한 기분이었다. 손이 닿지 않던 간지런 부위를 긁는 것같기도 했다.

 

매일 지리한 글쓰기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잠들어 있던 근육들이 있기나 한 것일까. 쫓기는 시간의 무게때문에 조급한 마음을 다독이며 허기진 배를 채우러 집으로 간다. 어제도 먹고 일주일전 이맘때도 먹던 그 똑같은 밥이 그리워 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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