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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 에세이

26 지나가는 모든 것들에 경의를

지나가는 모든 것들에 경의를


큰 아이가 중학교 졸업여행을 갔다. 초등학교를 졸업한게 분명 지난주 같은데, 아이가 떠날 준비를 한다. 놓치고 싶지 않은 기억은 선명한데, 아이의 얼굴에서는 그 기억자국이 자꾸 흐려진다. 그제서야 알았다. 큰 아이를 바라보던 내 눈빛과 내 아비가 나를 바라보던 눈빛이 같은 것임을. 초보 아빠의 좌충우돌에 가장 큰 피해자는 언제나 첫째 아이이고, 그 아이가 자라가며 보이는 약한 부분들이 엉터리 아빠의 제멋대로 때문이었음에 얼마나 괴로워했던가. 그러던 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속썩이는 일이 줄어들기 시작했다제법 어른스러워지고 말도 줄어들고, 잔소리해야할 일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늘 품에만 있어 날개가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하던 아이가 품안에 제법 늠름하게 자란 날개를 쭉 꺼내들었다. 아빠의 자리가 점점 작아져가고 누구의 도움없이 혼자서 날아보려고 날개를 퍼덕거리는 연습을 해댄다. 아직 창공을 날게할만큼 힘도 없고, 요령도 없어 보이지만 아비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아이가 날아오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여행을 다녀와도 다시 만날 날이 있고, 장기 출장으로 오랫동안 보지를 못했어도 다시 만날 날을 얼마나 당연시 했던가. 아이 품안에 날개를 보던 날, 아비는 울컥인다


아비의 여동생이 시집가던날 아비의 어미는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렸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아비의 어미는 네가 장가갈 때를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라고 했었다. 아비는 아비의 어미가 하던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몰랐다. 아비의 어미는 둥지를 날아가는 자식이 대견하면서도 지나간 모든 것들이 그리워서였다. 품안에 있던 살갑던 사랑이 마침표가 되고 이제 그리움이 시작되서였다. 시간을 도적질 당하고 기억을 함부로 팽개치고, 그런 후에 까무러치고야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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