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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 에세이

35 가장 맛있는건

중학교 졸업때 자장면이 먹고 싶었지만집안이 넉넉치 않아 어머니는 그냥 집에서 밥먹자고 하셨다뭐 복잡하게자장면 먹으러 가냐집에 가서 맛있는거 해준다는거였다실은 할머니까지 같이 오신 자리에 빠듯한 살림으로 살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개구쟁이면서도 조숙했던 남자는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빠르게 눈치채고 친구들과 놀기로 했다면서 손을 흔들면서 막 달려 갔었다물론,졸업식에 만날 친구들이 어디 있었겠는가모두 가족들과 자장면 먹으러 갔을텐데남자는 그냥 터벅 터벅 걸어서그렇게 집으로 갔다폼나고 근사하게 식사하고 싶어도 어려운 집안 살림때문에 어릴적 남자의 집은 외식하기가 어려웠다그래서 성인이 된 후에 남자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시고 근사하게 외식하는 것을 좋아했다아주 넉넉치는 않아도 그렇게라도 부모에게 좋은 것을 체험하도록 해주고 싶었다.어쩌면 자기 유년시절에 대한 보상심리였는지도 모른다하지남자의 부모는 늘 즐거웠던건 아니었다어쩌다 먹어도 해장국을 좋아하고흔하게 먹던 것들을 선호했다남자의 엄마는 심지어 자신이 이것저것 장을 보고 만들어 먹이는 것을 더 좋아했다비싼 것을 사드리려 해도 남자의 부모는 그다지 유쾌해 하지 않았다나이들었다는 것은 자신에게 익숙한 것들이 편하다는 것이다해장국  한 그릇이 어떤 부페음식보다 친숙하고 편한 음식이다한 숟가락 한 숟가락 떠 넘길때마다 몸은 오랜친구처럼 반가워했다나이듦이라는것은 편한 친구를

난다는 것이다.남자의부모는 예전부터 먹던 것을 즐거워했고남자가 함께 할때는 행복해 했다


오랫만에 집으로 돌아오면 만나는 한 살 위의 형은 남자의오랜 친구다. 벌써 알고 지낸지가 35년이 돼가는 형은 막역한사이어서 남자의 아내는 또 애인 만나러 가?.”라고 놀리기일쑤다. 초등학교때부터 알고 지냈으니 남자의 형은 남자의 모든 것을 안다. 맥주 한 잔을 나누며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눌때마다 벌거벗고 이야기한다. 적당히 가면을 쓰고 사는 세상살이에서 가면을 훌러덩 벗어버리고 키득 거리며 6학년도 됐다가, 중학생도 됐다가, 정치이야기꾼들도됐다가 적당한 음담패설도 지껄이기도 하다가 심각하게 아이들 이야기도 주고 받고 혼자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만 같다. 남자는 형이 하는 이야기안에 미처 담기지 못한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안다. 왜 했는지를 안다. 그 다음에 무엇을 이야기할 지 안다. 미처 다 표현하지 못한 이야기가 무엇인지도 형은 안다. 그래서 이야기는 중간 중간 징검다리를 마구 건너뛰어간다. 생략된 이야기안에는 상상력이 더해지고 성큼 성큼 킥킥, 속도가 더해진다. 가끔은 오래 묵혀 잊고 있었던 때묻은 속사람을 꺼낼때는 손이 닿지 않던 간지러운 곳을 벅벅 시원하게 긁어주기도 한다. 맥주 한잔에 세상 가장 맛있는 안주. 

 

주말에 찾아드는 침실은 아늑하다. 5일을 혼자 누워있다, 주말이면 아내가 옆에 누워있다. 곤히 잠든 아내의 손을 깍지 끼면 아내는 잠결에도 같이 깍지를 껴준다. 아내의팔을 쓰다듬으며 앉고 있으면 지난 17년의 세월이 강아지처럼 살랑 살랑 품을 파고든다. 아내가 차려주는 익숙한 밥상은 눈물겨울만큼 나를 닮았다. 

 

세월속에 올올이 뿌려진 흔적들,

나이들수록 가장 맛있는건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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