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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 에세이

33 두려움

 운동을 하다 발목을 접질렸다. 중요한 친선운동을 3일 앞두고 다친 부상이라 속상하기도 하지만, 붓지는 않은 애매한 정도였다. 디딜때마다 뜨끔한 정도다. 괜찮지 않을까 생각을 하려해도 자신은 속일수가 없다. 통증은 그게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빠르고 폭넓게 가르쳐준다. 현 상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느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며, 그 상태에서 어느정도 운동할 수 있을것인가 통증이 말해준다. 오랫만에 모이는 첫 모임따위는 기대도 하지 말라고 거두절미해 버린다. 그럴때면 고질적인 습관이 있다. 억지로 아픈 부위를 디뎌도 보고 만져도 보고 사용도 해본다. 누가보면강단도 있고, 정신력도 좋은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두려움때문이다. 그렇게 아프지 않다가 아니라 그렇게 아파서는 안된다는 두려움이다. 그래서 절뚝 거리는 발로 오히려 더 디뎌보고 더 사용해 본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안심을 시키려고 한다. 당연히 어느 정도의 부상은 통증이 익숙해지면 무리하더라도 움직일 수가 있다. 자신을 속괜찮다라는 메세지를 주려고 하지만, 실상은 두려워서다

. 아픈게 두려운게 아니라, 두려워하는 마음이 두려운것이다.

 

두려움의 깊은 바닥에는 분리라는 요소가 있다. 공동체로 부터 배척당하고 소외된다는 것은 죽음이었다. 오랜 수렵생활을 하던 우리 조상들의 DNA안에서는 자기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감당하지 못하는 병든 존재는 짐이다. 지금처럼 식량을 쌓아놓는 것도 아니고, 환경과 싸워가며 식량을 쟁취하고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기역할을 분명히 하는 공동체 일원이 되어야 한다. 극한의 고통과 어려움이 찾아올때 부상은 공동체를 위한 최후 선택의 대상이 되고야만다. 공동체로는 강력하지만, 개인 하나로 보잘 것은 인류는 공동체로부터 분리되어질 때 사실상 죽음에 내몰릴 수 밖에 없었다. 생존에 관한 문제뿐 아니라 어느 사회에서든 병든 개인은 일원이 되기가 어렵고,이는 곧 관계상 죽음을 의미할 뿐이다. 또한 두려움의 속성안에는 자유의 소멸을 내포하고있다. 움직일 수 없고, 행동을 할 수 없고, 내 의지를 온전히 반영할 수 없다는 소멸. 자신이 스스로를 제어할수 없다는 것이 두려움이 요소다. 소멸과 분리, 두려움의 진짜 본질은 두려움 자체다. 자기안에 서식하는 괴물의 먹이로 자신을 던져준채, 판단은 흐려지고 도망다니느라 조급해진다


두려움은 내안에서 나를먹이로 자라는 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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