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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 에세이

복어집 두 남자

#복어집에서
아는 지인이 복요리를 잘 하는 곳이 있으니 식사를 하자고 해서 ‘복지리’를 먹었다. ‘복지리’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음식에 낯가림이 심해서 새로운 음식에 별로 호의적이지가 않다. 게다가 비린내를 별로 좋아하지 않다보니 생선종류에 대한 편식도 있다. 다행스럽게(?) 그 집 복지리는 괜찮았다. 손님들도 많았다
맛있는 집을 다녀오면 가족들과 같이 가고자 한다. 다음날 ‘복지리’를 좋아한다는 아내를 데리고 그집에서 점심을 했다. 아내의 만족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북적거렸다. 우리는 입구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고 우리 옆에는 두 명의 남자가 동석을 했다.

식사를 하면서 자연스레 두 사람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들으려고 한건 아닌데 목소리가 크다보니 자연히 듣렸다. 처음에는 기술적인 전문용어투성이서 이해가 안됐다. 언뜻 제초제에 관한 이야기였다. 한 사람은 제초제 성분을 개발한 사람인 듯 하고 한 사람은 상관인지 거래처인지 모르겠다. 어느정도 듣다보니 대화라기보다는 한쪽의 일방적인 이야기였다. 조금 젊어보이는 한 사람이 열심히 설명을 하고 한 사람은 듣는 분위기였다. 제초제 성분의 임상실험과 효능에 대한 이야기같았고 자신이 만든 제안서에 대한 타당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맞은 편 사람은 그 임상에 대해서 부족한 것들과 모자란것에 대해 어떤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일방적이었다. 간혹, 이러 이러해서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조금 하려고 하면 맞은편 사람은 그 이야기를 자르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침튀기게 했다. 한참을 그 사람이 이야기 하고, 다시 맞은편 사람이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마치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안다는 것처럼 그 사람은 바로 이야기를 끊고 불도저처럼 설명, 아니 설득했다. 마치, 아무 문제없다고 독이 잔뜩 올라 배가 빵빵해진 ‘복어’마냥. 대화는 그런 식이었다. 그러고보니 맞은편 사람의 이야기는 거의 듣지를 못했던것같다. 식사를 거의 마치면서 커피나 한잔 하자면서 일어나는 분위기가 됐다. 잠시의 정적이 흐른후에 나이가 조금든 사람이 식사비를 계산하고 나갔다.

아마도 상대를 설득하려고 했던 사람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엄청 많았던 모양이다. 부연설명도 필요하고 시간만 더 내주면 1시간 2시간이라도 반박하고 이야기할 기세였다. 문득, 상대가 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지 제대로 시간을 주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저렇게 일방통행이면 정서적으로도 기분이 상할 수 있지 않을까. 자기 이야기를 그토록 잘라대면 누가 좋아하랴. 그에게는 상대의 이야기에 맞는 전략은 없고, 자기가 하려는 이야기들만 잔뜩 준비가 됐던 모양이다. 유연한 답변도 없고, 유연한 전략도 없이... 선택하고 지지한 자신의 판단에 편향될 뿐이었다. ‘선택지지편향’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일단 선택한 행동에 대해 사람은 그것이 옳은 선택이었다라는 믿음을 절대 놓지 않는다. 아마도 조금더 젊은 그 남자는 자신의 선택과 판단이 옳다는 믿음을 절대 놓을 생각이 없는듯했다. 문제에 대한 합리성같은건 필요치 않다. 지지나 반대냐만 남을뿐이니, 반대라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계속 외치면 될뿐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 결말은 어찌됐을까, 그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남자는 일단 한수를 접히게 된건 맞지 싶다. 싫든 좋든 상관없이 들어야만 하는 우리로써도 그 남자의 이야기는 하도 들어서 대충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겠는데, 맞은편 중년 남성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길이 없다.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으니까. 어떤 점에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그 사람이 원하는게 무엇인지 알수가 없었다. 이미 그 과정이 생략된것일 수도 있겠지만, 자기 패는 다 까버리고 상대 패는 뭔지를 모르니 일단 한 수 접었다고 봐야겠지.

그는 정말 그 분에게 자신이 하려던 이야기를 관철시킬 수 있었을까? 슬쩍 볼때마다 맞은편 중년남성은 고개를 숙인채 이야기를 들을뿐이다. 자기 신념에 빠진 누군가의 일방통행은 쉽게 지치게 한다. 배드민턴을 하고 있지만, 배드민턴의 고수와 하수의 차이는 어떤 콕을 치느냐에 따라서이다. 하수는 자기콕만 쳐다보며 열심히 친다. 힘이 잔뜩 들어가 쉽게 지치고 실수도 많고, 아무리 멋지게 쳐도 되치기 당하고, 어이없이 점수를 주기 일쑤다. 게임에서 이긴다는건 더욱 요원한 일이다. 고수는 상대에 맞춰친다. 그리 힘을 들이지 않아도 콕이 오는 길목을 아니까 지치지도 않고 쉽게 점수를 얻는다. 그래서 고수랑 경기를 하다보면 ‘어 어’ 하다 경기가 끝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데는 자기 신념에 대한 독선이 있기도 하겠지만, 그 신념에 금이가는 불안함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자신의 신념에 더욱 확신을 주기위해 더욱 자기 이야기에 몰입을 하는게 아닐까. 혼자서는 그 신념이 맞는지 틀린지, 변해야 하는 것인지 고수해야 하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하지만, 피해는 한사람뿐일 수도 있지만 공동체 전체가 될 수도 있다

#천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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