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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 에세이

사자처럼 해적처럼

차로 좀 가야하는 곳이지만 그 집 순대국은 맛이 좋다. 특히 이 집을 즐기는건 ‘순대만국밥'이 있어서다 . 순대국을 내장맛으로 먹는 사람도 있지만, 이상하게 내장은 별로인데 순대국은 맛있다. 밥을 말아먹을 때 그 고소한 맛때문이다. 그래서 내장을 빼놓고 먹거나 순대만 달라고 해서 먹기 일쑤였는데, 이 집은 아예 메뉴에 ‘순대만’으로 된 국밥이 있으니 딱이다. 뒷맛도 깔끔하고 냄새가 일체 나지도 않는다. 수저위 뽀얀 순대국물에 고기순대는 부드럽게 씹히는 순대의 고소함이 국물맛을 더욱 깊게 해준다. 이 집 순대국 아주머니는 손님대하는게 곰살맞다. 시덥잖게 많이 좀 달라고, 멀리서 왔노라며 말 장난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다 받아준다. 신나서 혼자 이야기 하는 것도 아니고, 혼자 중얼거리며 가버리지도 않는다. 손님이 얼마나 많이 오는지, 순대국이 왜 맛있는지, 오랜 친구마냥 주절 주절인데 거침없. 얼마든지 필요하면 말상대가 되어줄 듯 하는 아주머니는 다정스럽다. 사람에 대한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군데 군데 다른 손님들도 가볍게 말을 툭툭 건네는데 이야기의 들어가고 나가고에 미련이 없다. 손님이 더 이상 말을 건네거나 이야기를 받지 않으면 아주머니는 더 이상 이야기에 늘러붙지 않는다. 가볍게 웃으며 말 상대가 되도 주문할때와 기다릴 때, 먹을 때 아주머니는 기막히게 치고 빠진다. 언제 왔는지 모르게 다른 손님 이야기를 재미나게 받아주고 또 어느새 다른 손님과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주저함도 없고, 누군가를 의식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식사를 방해하는 법이 없다. 오히려 이쪽에서 은근히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기대하게 된다. 당당한 아주머니 말씸이 고소한 순대국물에 아삭 씹히는 깍두기같이 즐겁기만 하다.


순대국밥을 먹고나면 근처에 갈만한 커피숖이 두 군데 있다. 한 곳은 문을 닫아서 이번에는 처음 가보는 커피숖에 들어갔다. 역시 커피맛이 좋은 곳이라는 정보로 찾아간 가게다, 로스팅하는 기계가 입구 옆에 설치되어 연신 돌아가며 커피를 볶고 있다. 한 사람 정도 비좁은 공간을 지나 3개중 한 개 테이블에 앉는다. 테이블이 별로 없다. 커피콩의 고소하면서 건조한 내음이 가득했다. 적당한 온도에 시간이 잘 조화되면 깊은 향과 함께 커피콩에는 기분좋은 비린 내가 살짝 난다. 적당히 수분이 증발되면서 안에 갇혀있던 커피의 깊은 향이 마침내 그라인더에 부숴지면 실내는 기분좋은 향이 가득하다. 커피가게는 그 맛이다. 한창 로스팅을 하던 아주머니가 주문을 받는다. 일행과 서로 웃으며 어떤 커피를 마시면 좋을까 기분좋게 메뉴판을 훑는다. 아주머니는 별다른 동조하지 않는다. 한번쯤 말에 끼어들만도 한데, 아주머니는 무심하다. 시덥잖은 손님들의 농에 굳이 반응치 않는다. 머쓱하다. 살짝 비켜서 다른 곳을 바라보는 눈빛과 가늘고 길게 그려진 눈썹, 꼭 닫은 얇은 입술은 야무지다 . 주문을 받고서 커피를 드립하는 아주머니에게 슬쩍 리필이 되는지 물었다. ‘네 천원입니다’ 딱 필요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다고 불쾌감이 드는 정도는 아니다. 쌀쌀치도 않고 딱 필요한 만큼이다. 뭔가 대꾸해야한다는 의무감같은건 없다. 커피를 전하고 자리로 돌아간 아주머니는 로스팅 기계를 들여다본다. 볶아지는 커피향에 익숙해졌음에도 여전히 고소함이 방안 가득 새롭다. 커피맛이 기막히게 좋으니 그만아닌가. 당당할만하네. 어차피 카페는 커피맛이니.

영적으로 산다는건 자기 일에 몰입하고 열중하는 삶이 아닐까. 자기회의, 두려움, 우린 늘 무언가에 충실한 의무주의자이다. 때론 너무 부끄럽고, 너무 겁을 내고, 너무 자의식적이고, 너무 자존심도 세다. 진짜로 사람들을 웃게하는 개그맨은 관객을 의식치 않는다고 하는데, 우린 자의식이 너무 강하고 언제나 누군가를 의식한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안에 검열원 하나쯤은 두고 있지 않던가. 현재 를 살아야 하는 우리는 너무 불안하다. 던져버려야할 것들을 전부 끌어안은 고물상이다. 어떤 일에든 사랑하며 관심갖고 열심히 적극적으로 살 때 나로 산다는게 비로소 영적인 의미가 된다. 누군가를 지나치게 의식하거나 설득하지도 않은채 때로는 들어가고 나가고가 거침없는 해적으로, 때로는 도도할만큼 당당한 사자로. 영적으로 산다는건 사자처럼 해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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