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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 에세이

선악과

#선악과 
창세기에는 선악과가 나온다. 하나님은 모든걸 다 먹어도 좋은데,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지 말라고 했다. 그 열매를 먹는 날에는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뱀이 하와를 유혹한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고 너희가 그걸 먹으면 그 날로 너희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될 거야. 그래서 선과 악을 알게 될거야” 하와가 선악과를 볼 때 과연 먹음직스럽고 보기에도 탐스러웠다. 과연 사람을 지혜롭게 해주는 열매처럼 보였다고 했다. 근데 인류 최초의 사람이었던 하와가 죽음이라는 의미가 뭔지는 알았을까? 하나님처럼 된다는 의미도 얼마나 이해가 있었을까. 아담과 하와가 살던 때는 아무런 부족함이나 결핍이 없던 때가 아닌가. 그런 유혹에 흔들릴만큼 결핍과 욕망에 사로잡혔던 것일까. 단지 먹음직스러웠기 때문에 먹은게 아닐지...그건 여러 신학적인 견해가 있으니...


아담과 하와는 그 열매를 먹고 선과 악을 알게 됐다. 자신들의 벌거벗은 몸을 보았을때 ‘눈이 밝아졌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고 아담을 쫓아내실때도 “보라 이제 사람이 우리 중 하나처럼 되어 선과 악을 알게 되었구나”라고 말씀하셨다. 선악과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맞다. 문제는 아담과 하와가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선과 악, 우린 정말 다 알고 있는가. 아주 분명하고 명확한 것을 지나 애매한 경계선에서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하는게 아닌가. 그마저도 어떤 가치는 시대와 문화에 따라 상대적이다. 인류의 역사는 선과 악, 옳은 것과 그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충돌이었고, 숱한 비극은 반복됐다. 선악과를 먹은 우리의 욕망은 창조주와 같은 심판이고 정죄이지만, 과연 우리가 선과 악을 아는 창조주만큼 완전한 존재이던가. 하나님이 되는게 아니라 하나님을 흉내내는 심판자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 바로 뒤에 이어지는 4장은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다.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이다. 자신의 제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자기만의 논리가 있었을 것이다. 자기만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제사는 무시되고 아벨의 제사만 받아들여진 것에 대해 가인은 이미 마음속으로 자신만의 옳은 것과 그른 것에 대한 가치판단이 세워졌을 것이다.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심퉁맞고 짜증스럽다. 당연히 이래야 하는 일들, 자기 판단에 따르면 있을 수 없는 일들, 그릇된 하나님의 처사가 억울하기만 하다. 결국, 가인은 아벨을 죽이고 말았다. 받아들일 수 없던 분노는 스스로에게 명분과 확신을 주었고 계획적으로 동생을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됐다.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하는데 있어 우리는 피조물일뿐이다. 하지만, 선악과를 먹은 우리는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에 익숙하다. 때로 자신이 믿는 옳고 그름에 대해 우리 안에 가인은 칼을 들고 말로, 글로, 행동으로 거리낌없이 살인을 주저하지 않는다. 시지푸스의 숙명처럼 끊임없이 심판하고 정죄한다.

성령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러 오신다고 하셨다. 하지만, 성령은 선물과도 같아서 각양 은사뿐만 아니고 삶의 열매를 맺게 해주시는데, 그 열매라는 것이 스스로 갖기 어려운 열매들이다. 정의감 넘치게 누군가 재단하고 상황에 대해 정리하며 칼질하는 것에 익숙한 우리가 스스로 갖기 어려운 열매들. 사랑, 희락, 화평, 온유, 절제, 충성, 오래참음, 양선, 자비...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해 들어온 우리안에 죄성은 수치심이었고 그걸 덮어주기 위해 짐승중 하나가 죽어야만 했다. 그 짐승이 죽음으로 인해 아담과 하와의 벗은 몸은 가리워졌다. 희생이 있어야만 죄의 문제가 해결됐다. 제사를 통해 동물들의 희생이 있어야만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종국에는 예수님의 희생으로 인해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함을 누리게 됐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분이 성령이다.

끊임없이 선악을 분별하며 그 대가를 치루는 가인의 들판에서 선악과의 독성을 중화시키고 해독하는 치료제. 모든 미혹케 하고 유혹하는 것들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진리의 영. 성령은 선물같은 치료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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