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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 에세이

질투

질투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H도사, S누나 !! 한창 사춘기를 보내던 까까머리 중학생눈에 S누나는 천사였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활짝 핀 웃음. 사춘기 중학생은 S누나를 몰래 몰래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전교인 수련회를 가서도 온통 신경은 S누나를 훔쳐보기만 할뿐이었고, S누나의 모든 움직임은 스틸사진처럼 한 장 한 장 소중한 사진으로 까까머리 중학생 마음에 차곡 차곡 쌓였다. S누나가 교회에 있지 않을까, 학교 수업이 끝나면 교회에 들르는게 일이었고 지금 올지 모른다는 행여 기대감에 밤 늦도록 기다리기 일쑤였다. 신앙심이 좋았던 S누나였기에 수요예배나 철야예배에 나올지 몰라, 한번도 빠진 적이 없었고 일찍 오는 날에는 S누나가 오늘 예배에 오게 해달라고 땀방울이 핏방울되도록 빌었다. 그러다 어느날은 거짓말처럼 교회에 들어오는 S누나를 보는순간, 거의 울어버릴 것처럼 감사기도를 드리기도 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성탄절에는 S누나에게 기어코 좋아한다고 말을 했고, 귀엽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S누나때문에 쓰러져 졸도해버릴 지경이었다. S누나가 잠시 고향에 내려가게 되어 떠나있던 6개월은 세상 모든 슬픈 노래의 주인공이었고, 지금도 그 노래의 가사들을 여전히 다 외울정도이다. 사춘기 중학생의 상사병이 어찌나 깊던지 밤이면 우울함에 늘 시인이 되었고, 친구들도 만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날 S누나가 갑자기 나타나게 됐고, 그 미칠듯한 기쁨에 온 동네방네 소리를 지를뻔했다.

가을에 교회에서 천안으로 수련회를 가게됐다. 돌아오는 길 우리 모두는 잠시 차 시간이 늦어져 단체로 목욕탕에 가기로 했다. 까까머리 중학생은 괜히 기분이 이상했다. 목욕, 묘하게 설레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목욕을 하고, 모이기로 한 장소에 조금 일찍 나갔다. 행여 S누나가 먼저 나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으니까. S누나가 저 멀리서 오고 있었다. 벌써 끝났나. 저 멀리서 오는 S누나 옆에는 당시 중등부 담당 H도사도 같이 오고 있었다. 우리는 당시 전도사를 도사라고 불렀다. 그런데 둘이 도란 도란 이야기하며 오고 있는게 아닌가. 뭐지 싶다가 그제서야 두 사람이 목욕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번쩍 지나갔다. 모두 목욕탕에 들어간 사이 둘은 정답게 담소를 나누며 함께 있었던 것이다. H도사님이 이럴 수가. H도사가 어찌 이럴수가 있단 말인가. 전혀 관심도 없고, 상담해줄때는 언제고 뒤로 저렇게 호박씨를 깐단 말인가. 이런 의뭉스러운 사람을 봤나. 눈에 불이 확 들어왔다. S누나가 누군가와 정답게 이야기를 하는건 처음 보는 일이었다. 미치도록 얄미웠다. 가슴에 장작불이 타닥 거리며 시뻘겋게 타올랐고, 그 불위에 다시 기름을 잔뜩 끼얹어 마침내 온 사방으로 불꽃을 튀기었다. 그리고는 마침내는 새까만 재만 남았. 돌아오는 길 H도사와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니 그후 한참동안 말도 섞지를 않았다. H도사는 왜 요즘 교회에 나오지 않는지 물었지만 건성 건성으로 대답할뿐이었다. 밉기는 S누나가 더 했다. 교회를 가도 쳐다보지도 않고 말을 건네도 대꾸도 하지 않았다. 질투심에 어쩔지 몰라 힘들어하던 까까머리 중학생의 겨울은 유난히 길디 길고 춥기만 했고, 그해 겨울 H도사와 S누나는 교회에서 볼 수가 없었다.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가 질투를 이야기한다. 4장 5절에 한탄을 한다. [정말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살게하신 성령님은 우리를 질투하기까지 사모하신다’라는 성경 말씀을 하찮은 말로 생각하십니까?] 얼마나 갑갑하면 야고보 사도는 성경말씀이 하찮게 보이냐고 가슴을 친다. "하찮게?" ...야고보 사도는 질투에 대해 나름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나보다. 질투는 개인적인 영역이라 경험해봐야 아주 조금 그 정도를 알 수 있을텐데 야고보 사도의 권면을 보니 그는 질투의 실체를 아는 것같다. 
사춘기 소년의 질투심정도에도, 아무 인과관계없는 이기적인 일에도 질투는 시퍼렇게 불을 튀기는데, 응당 마땅한 일에 대한 성령님의 질투는 대체 어느정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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