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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 에세이

요한계시록 666

# 요한계시록 666 


계시록에는 짐승이 나온다. 땅에서 올라온 이 짐승은 작은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이나 가리지 않고, 온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했다. 지혜가 있다면 그 숫자를 세어보라고 하며 요한은 그 숫자가 666이라고 했다. 요한이 말한 666은 당시 기독교인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하던 로마의 네로황제를 가리키는 암호일 수 있다. 묵시 문학이라는게 당시 억압가운데 처한 사람들이 상징적인 단어들을 사용하며 서로를 격려하던 방식이니 로마의 무서운 폭정앞에 절망하는 기독교인들을 위로하고 소망을 주는 복음서중에 복음서가 요한계시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계시록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어떤 상황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았던 것처럼, 현재의 성도들 역시 어떠한 어려움에도 믿음의 소망을 가지라는 현재적 메시지이기도 할 것이다. 


666 ! 고등학교때 한창 유행했던 이 짐승의 숫자는 중고등학교때 열풍이었다. 당시의 일률적인 내용들이 지금은 모두 틀렸으니까, 그 이야기는 하지 말고... 6이라는 숫자가 뭘까. 6은 사 람의 숫자가 아닐까? 우린 7을 완전한 숫자, 하나님의 숫자라고 한다. 하나님이 6일간 일을 하시고 제7일에는 안식하셨다고 했기 때문에 7에 그런 의미를 부여한다. 하나님이 6일간 천지를 만들며 일을 하시고 일곱째날에 안식하셨다. 6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이 가장 중요시 여기던 날, 안식하는 마지막 일곱 번째가 빠진 숫자이다. 일은 하는건 똑같은데 6과 7에는 하나님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날 ‘안식’과 그 의미를 뺀 삶에 대한 희망, 소망 그리고 욕망. 



요즘 가장 뜨거운 축구선수가 우리나라 손흥민 선수이다. 아시안컵과 EPL에서의 손흥민선에 대한 걱정은 휴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아시안컵이 끝나고 바로 투입된 중요한 두 경기에서 손흥민 선수는 모두 골을 넣으며 사람들을 놀래켰다. 지쳤다고 하면서도 기어코 골을 넣은 손흥민 선수에게 사람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모두의 공통된 걱정은 손흥민선수의 피로였다. 빨리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1주일간 푹 쉰 손흥민선수는 뉴캐슬전에서 다시 펄펄 날며 1골을 넣었고, 기어코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중요한 결승골까지 넣었다. 손흥민선수에 대한 기대는 그가 푹 쉼으로써 체력이 회복됐다는 것이었고, 손흥민 선수는 기대에 훨씬 더 부응했다. 어떤 스포츠 경기도 쉬는 시간이 없는 종목은 없다. 중간 중간 쉬는 시간없이 경기하는 경우는 없다.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이나, 일제 강점기 독립군들이나 그분들이 받았던 고문중 가장 고통스러웠던건 재우지 않는것이라고 한다. 쉼이 없이 각성된 몸과 마음은 사람을 미쳐버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어떤 피조물도 안식없이 영속할 수 있는건 단 하나도 없다. 


수년전 방송사일이 뜻하지 않게 몰렸던 적이 있었다. 7시 아침 생방송에 각종 편집, 그리고 주말에는 부지런히 공개방송을 뛰어다니는등 어찌하다보니 그야말로 주7일 근무를 했다. 게다가 외국의 음악팀이 방문을 해서 1주일 공연 스케줄도 책임져야 했다. 일은 늘 자정에 끝났고, 5:30분에 출근했다. 지쳐있던 육신에 1주일간의 공연 스케줄은 확실히 무리가 됐다. 아침 출근길 운전하고 오는 길. 쭉 뻗은 직진길에 새벽이라 차들은 없는데 졸음이 걷잡을 수없이 밀려왔다. 아주 잠깐만 눈을 감자는 유혹이 왔다. 깜빡이 아니라 정말 까암박정도만 하자. 천근만근 눈꺼풀을 힘겹게 지탱하다, 결국 조금만 길게 눈을 감는다고 감았다. 그러다 불현듯 눈을 떴을 때는 바로 앞이 커브길이었다. 간신히 핸들을 돌리며 방향을 바꿀 수 있어서 큰 사고를 면했다. 어찌나 심장이 쿵쿵거리던지 모골이 송연했다. 


분주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안식일에 쉬며 하나님을 예배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면 인간은 회복된다. 하루의 안식은 다시 1주일을 살게 한다. 생각지 못하던 아이디어도 떠오르고 체력도 보충이 된다. 앞으로 해야하는 일에 대한 점검도 하며 방향도 조정하고 판단도 명확해진다. 1주일내내 일한다고 해서 그게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는건 아니다. 인간을 만든 하나님이 가장 정확하게 보시고 정하신 규칙이다. 인간을 위한 최선이다. 주일, 안식일...하나님이 직접 시범을 보여주셨다. “심지어 신조차 7일에 안식하는걸 보지않았니, 내가 만든 너희도 반드시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쉴뿐만 아니라 안식하며 하나님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안식’을 부정하는 존재가 나타났다. 인간이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성공에 대한 강박관념이 생겼다. 성공을 위해 우리는 부단하게 노력하고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 노력이 성공을 통제하고 조정할 수 있다는 관념이 우리안에 생겼다. 성공과 노력. 우리 시대 진짜 우상은 무엇인가. 짐승이 썼다는 열 개의 왕관처럼, 찬란한 성공의 왕관이 아닌가. 개인의 자유의지만으로 성공을 조정할 수 있다는 신앙, ‘네가 노력하지 않아서 그래’ ‘네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래’ ( 좋은 대학과 사람이 대체 무슨 상관이 있으며, 부자인 것과 사람이 무슨 관계가 있나. 그러나 우리는 이런 분리에 너무나 익숙하지 않나? ) 실패에 대한 문제는 주7일, 한달, 1년 365일 ‘노력’의 제단앞에 번제를 드릴 것을 요구한다. tv와 우리 시대 미디어 대부분은 그 번제물을 요구하는 선지자이다. 행복이 무엇인지를 설교하는 예언자이다. 어떤 아파트에 살아야 행복한지를 설교하고, 어떤 자동차를 타야 성공인지를 가르친다. 어떤 것을 가진 사람들이 그토록 행복하게 살아가는가 간증하고, 미치도록 치솟는 아파트값에 환호하는 이들을 보여주며 분발을 촉구한다. 최선을 다해 노력을 다하면 누구나 성공을 통제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안식은 교묘하게 부정되고, 안식일의 의미는 고리타분해진다. 우리 사고안에 뼛속까지 새겨진 천박힌 자본적 사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인본적 사상. 


똑같지만 단 하나 안식의 의미가 빠진 숫자 6, 이 불완전함은 인생에게 어떠한 만족이나 완전한 평화를 줄 수가 없다. 우리에게 안식일이 왜 필요할까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졸린 눈으로 운전해야 하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채 잡은 우리 인생의 운전대. 잠깐 이 땅에 있는 것을 허락받은 짐승이 교묘하게 심어놓은 하나님 없는 삶, 하나님을 모독하는 천박한 자본적 인본주의. 666은 그렇게 시뻘겋게 인을 박은 우리의 사고를 의미하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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