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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 에세이

정동진 알몸의 여인


애초에 목사님과 친한 형과 떠나는 동해안 여름여행은 긴장감은 없었다. 목사님과 같이 가게 되면 몸가짐도 조심스러워지고 행동거지도 똑바로 해야할 것같은데 그렇지는 않았다. 어려서부터 만난 목사님에게는 그런 불편함이 없었다. 나이차가 적은건 아니다. 경건하고 엄숙한 교회입장에서 보면 사실 목사님은 거의 날나리같았다. 군대 다녀온 친구에게 상가집에서 싸온 편육과 막걸리를 가지고 한강고수부지에서 만나자고 하지를 않나, 한번은 청년들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맥주도 시켜 한잔 따라주기도 하셨으니 이정도면 청년들로서는 거리감이 생길리 만무하다. 때론 야한 얘기도 하고 술과 담배에 대해서도 관대하니 말이다. 그런다고 해서 무슨 대단한 철학을 가진 목사님은 아니었다. 그저 조그만 개척교회에서 어려서부터 가르쳤고 나이들어 가면서 거리감을 두지 않기 위해서 아니, 그 아이들이 커가면서 다른 곳으로 갈까봐 붙잡아 두려는 마음에서 그랬던 것같다. 물론,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행동한 것도 아니다. 목사님도 그런 경계선을 잘 알고 또 청년들이 지켜주니 어느정도 자율성을 가지고 우리를 대했다고 보는게 맞다. 

공교롭게도 여행은 결혼을 하고 처음 맞는 여름 휴가였다. 아내는 신혼 첫 해인데도 여행을 간다고 하니 선선히 허락해줬다. 편한게 좋은 아내는 본인도 본인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자신도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면 된다고 생각을 하니 굳이 따지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여행은 동해안 해안선을 따라가는 여행이다. 차는 형의 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바닷가도 가고 여기저기 구경을 하면서 다녔지만, 사실 남자들의 여행이라는게 특별하지 않다. 서로 옛날 이야기를 하며 수다를 떨고 좋은 곳이 있으면 들러서 맛있는 것 먹고 그게 전부다. 좋은 구경거리가 있다고 해도 남자 셋이라면 그건 그냥 허름한 음식점에 걸린 오랜 명화사진 같아서 한눈으로 훑어보고 지나가면 그만이다. 더구나 세사람 역시 그렇게 여유롭고 낭만적인 여행을 즐기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보니 동해안 여행은 하루 지나고 나니 무료해지기 시작했다. 딱히 세워놓은 계획이 없다보니 지루해지는건 금방이었다. 다음 갈 곳에 대한 기대가 없고,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다보니 가는 곳이 별반 다르지 않고 관심도 끌지를 못했다. 그나마 알고 있는 곳이 정동진이니 그곳에 가서 구경하고 서울로 돌아가기로 했다.  tv를 통해서본 본 게 있으니 정동진에 가면 일출도 보고 바다도 보고 높은 언덕에 있는 카페에 가서 동해 전망도 구경할 수 있으니 괜찮겠다 싶었다. 대충 정동진일대를 둘러보고 거대한 배로 만든 카페에서 식사도 하고 숙소를 구했다. 오르고 올라서 모텔을 구했다. 높은 곳에 있으니 전망이 좋은 곳이었다. 성수기라면 가격도 비싸고 구하기도 어려웠을텐데 가격도 저렴하고 방을 구하기도 수월했다. 여행을 했던 시기가 성수기가 끝나고 사실상 휴가철도 마무리될 때쯤이니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거나 해수욕을 하기가 추워서 사람들이 거의 철수해서 방을 구하는게 어렵지 않았다. 맥주 한 캔에 음료수 과자, 그리고 마른 오징어를 먹으며 이런 저런 옛날이야기를 나눴다. 씹다 씹다 고소한 물이 빠진 마른 오징어처럼 옛날 이야기도 점점 단물이 빠져서 건조해졌다. 여행의 막바지는 새로울 것도 없고, 이야기할 소재는 이미 하루 이틀만에 동이났으니 기억은 제한되어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반복하기 일쑤다. 좋은 풍경을 보면서 여행한다고 해서 동해라고 하면 무조건 어디를 가나 낭만적이고 마음을 한없이 부풀게 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을 하기 쉽지만, 무엇이든 하루 충분히 보고 나면 다 똑같다. 그럼 바닷가에 사는 사람이 모두 시인이 되었겠지 . 


10시가 조금 넘어서 더 이상 이야기 거리도 떨어지고 할 만한 추억도 어느새 동이나 버렸다. 목사님은 외지에 나오면 문을 꼭 잘 닫고 자야한다고 이야기하면서 문을 잘 잠궜는지 확인해보라고 하셨다. 바깥에 나오면 사람들이 술을 먹으면서 풀어져 자다가 문을 잠그지 못해 도둑이 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누워서도 이런 저런 이야기 생각나는대로 나누다가 잠이 들었다. 

어렵게 잠이 들어 곤하게 꿈속을 헤매이는데, 누가 흔들어 깨웠다. 한밤중에 흔들어 깨우는건 일상적인 일이 아니니 바로 눈이 떠졌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이상했다. 사람은 굳이 확인을 하지 않아도 180도로 주변을 인지하지 않던가. 목사님과 형이 서 있는게 보였는데 누군가 방한가운데 누워있다는걸 인지한 것이다. 방안에는 사람이 넷이었다. 목사님과 형, 나 그리고 누워있는 사람 하나. 깜짝 놀래 형과 목사님 옆으로 가서 섰다.  두 사람 역시 황당하고 당황스런 얼굴로 누워있는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 한밤중에 잘 자고 있는 세남자의 방에 왠 여자가 누워있단 말인가. 그렇다 누워있는 사람은 여자였다. 더 놀라운건 벌거벗고 있었다는 것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않고 알몸으로 내 옆에서 자고 있었던 것이다. 반듯하게 누워있는 여성은 30대 중반이나 40대 초반쯤 되보이는 여성이었다. 너무 놀란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상황을 파악하려고 작은 목소리로 서로 속삭였다. 처음에 나눈 이야기는 죽은게 아닌가 싶었다. 누군가 이 여자를 죽이고 이곳에 갖다 놓아서 우리에게 덤태기를 씌우려 하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죽은 사람을 데려다 놓지 않고서야 어떤 여자가 알몸으로 전혀 모르는 남자들 틈에서 자고 있단 말인가. 죽지 않고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자는 죽어야만 했다. 그런데 그건 틀렸다. 왜냐하면 누가봐도 여자는 쌔근 자고 있는게 여실히 보였다. 그렇다면 다음에 생각할 수 있는건 꽃뱀이었다. 이곳에 납치가 된 것처럼, 또는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끌려와 옷을 벗기워진 것이다. 이제 억세고 험악한 인상을 가진 사람들이 들이닥쳐서 우리를 다그치며 몰아세울 것이다.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들을 모두 털리거나 큰 돈을 요구당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이 맘때쯤이거나 벌써 누군가 들이닥쳐야 하지않나. 누구도 들어오거나 하지도 않고 인기척도 없었다. 여자를 천천히 보니 자기 집인양 너무나 편하게 잠들어 있었다. 잠든 여성의 알몸을 본다는건 꼭 야릇한 상상을 동반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자극을 받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더 이상한거다. 

목사님이 갑자기 발로 휙하니 이불을 걷어찼다. 우리가 덮고 있던 이불이 그 알몸의 여인의 몸을 덮었다. ‘에비’라고 하면서 이불을 발로 걷어찬 목사님은 마치 못볼 것을 보거나 아니면 불결한 무엇인가를 피하고 싶어서 걷어찬 것만 같았다. 아니, 호기심어리게 알몸의 여인을 보고 있던 우리의 영혼을 행여 찾아올지 모를 음란으로부터 지켜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낯선 남자들앞에서 알몸으로 자고 있는 여인이 처연하고 불쌍해서일지도 모른다. 암튼 알몸이 덮여져 가리워지고 나서야 그 황당하던 상황이 안정됐다. 이불을 덮고 있는 것이랑 알몸을 내놓고 있는 것이랑 완전히 달라졌다. 목사님은 빨리 나가자고 했다. 생각해보면 그게 가장 빠른 대응이기는 했다. 그 자리에 어떤 모양으로든 있는건 좋지가 않았다. 안내로 가서 관리인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상황을 듣는 주인아저씨도 믿기지 않는 이야기라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올라갔고, 우리는 바깥 마당에 나왔다. 어떤 이유에서 그 여자가 우리 방에 들어왔을까 의견이 분분했다. 분명히 자기전에 문단속을 잘 해야 한다고 해서 문을 잠궜는데, 어떻게 들어왔을까 이상했다. 나는 분명히 문을 잠궜다고 했고, 목사님은 문이 어딘가 잠궈지지 않았기에 들어온게 아니냐고 했다. 꽃뱀이거나 아니면 자기 숙소인지 알고 들어온게 아닐까 오랜만에 흥분된 목소리로 서로 추측을 해댔다. 상황으로부터 벗어나니 우리의 상상과 이야기는 익살스러워지기도 하고 음흉해지기도 했다. 여자를 처음 본건 형이었다. 자면서 자꾸 얼굴에 머리카락이 닿고 좁아서 자면서 밀쳐내고 돌아서고 하다가 답답해서 눈을 뜨게 됐는데, 옆에 목사님 머리 하나 자기가 바라보는 편으로 머리가 두 개였다고 한다. 내 머리만 있어야 하는데, 하나가 더 있는 것이고 그 여자가 자기 쪽으로 해서 자고 있었던 것이다. 밤에 왜 여자가 자기 옆에 자고 있었으니 거의 심장이 멎을만큼 놀랬다고 한다. 얼마나 자기가 무서웠는지 상상해보라는 것이다. 하긴 지나고 나서니까 망정이지 그리고 세사람이 서로 같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때 형은 혼자 여자를 봤을테니 충분히 놀랠만했다. 그러고서 자기가 일어나서 목사님을 깨우고 나도 깨웠던 것이다. 한참을 이런 저런 상상과 추측을 하고 있는데, 주인이 내려왔다. 옆방에 놀러온 투숙객이라고 했다. 가족이 놀러왔는데, 그 집 아내였다고 한다. 아마도 몽유병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몽유병! 만일 문이 잠겨있지 않았다면 그럴 수 있는 상화이었다. 올라가니 옆방에 남자가 등을 보인채 담배를 피고 있었다. 조그만 꼬맹이들 둘을 데리고 온 엄마였고 누군가의 아내였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담배를 피우는지 모르지만, 하얀 연기가 힘없이 올라가는걸 보면서 누군가의 남편은 얼마나 마음이 무거울까 싶어졌다. 누구도 이야기 하지 않지만, 남자의 어깨가 무겁게 벽에 기대섰다. 거꾸로 생각을 해보면 그 아주머니도 큰 봉변을 당했을뻔한게 아닌가. 못된 사람이라도 만나거나 했다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다. 알몸으로 어디 남자들이 있는 곳에 떡하니 어울려서 자고 있다고 하면 그 여자의 마음은 또 얼마나 비참할까. 황당하고 묘한 상황에 대한 우리의 짖궂던 상상과 음흉스럽던 농짓거리가 갑자기 미안해졌다. 누군가의 어미이고 아내였을텐데.  돌아오는길, 구운몽의 주인공 성진의 하룻밤 꿈처럼 묘했던 전날의 기억들을 되새기며 늦여름의 여행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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