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천일 에세이

한정거장



   중년의 남자에게 혈관질환은 언제나 두렵고 걱정스런 일이다. 정밀한 혈관검사는 그런 시류와도 잘 어울린다. 건강은 모든 것에 최우선이니까. 당연히, 중년의 남성이라면 누구나 갖는 최대 관심사이다. 약간의 중성지방과 고지혈증, 혈압을 가지고 있다면 생길 수 있는 조금 두껍고 헐거운 심장. 사실 그것도 그렇게 심각할 정도인가 의심된다. 중년의 혈압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법한 이야기를 의사는 그럴싸하게 진단하는 것에서 의심스럽다. 누구나 그럴만한 나이에 있을 법한 이상을 과도하게 비즈니스화 하는게 아닌가 하는 그런 의심. 약도 결국 고지혈증약과 혈압약이다. 고지혈증약은 이전에도 받았던 약이고 결국 혈압약인데, 혈압약이야 듣지 않으면 병원에서 다른 약으로 바꿔가며 조정하면 되는 것이니 그게 그거다. 어디든 상술이니, 이 병원도 상술에 자꾸 의심스럽다. 고가의 정밀한 검사를 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혈관에 대한 두려움과 근심이 있으니 한번 정도는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비용은 근 200만원, 개인이 부담하기에는 적지 않은 금액이니 병원은 실비를 이용한다. 한번에 사용하는 금액의 상한선이 있으니 25만원이면 5-6회로 나눠서 검사하고 보험사에 맞도록 끊어 준다. 병원이나 환자나 손해볼 것없는 거래이긴 하다. 나에게 손해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얕은 머리로 쏠쏠한 수익을 올리는 의사와 병원이 괜시리 얄미운건 왜일까? 굳이 이병원에 오지 않아도 될걸 요란스레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고 그들의 호구가 된게 아닌가 영 마음에 들지가 않는다. 


   병원을 나와 좋아하는 북창동 순두부를 먹으려고 홍대입구역으로 가기로 했다. 아차, ‘아리랑’을 읽다가 갈아타는 역을 지나쳐버렸다. 시청에서 내려서 2호선을 타야하는데, 그만 한 정거장을 더 가서 서울역에서 내리고 말았다. 기분이 드럽다. 놓쳐버린 전철을 타는건 짜증스런 울이다. 전철 노선도를 찬찬히 보니, 서울역에서 공항철도를 이용하면 홍대입구역으로 갈 수 있다. 나쁘지 않다. 내가 한 실수가 실수가 안되는 방법이다. 공항철도로 갈아타려고 환승역으로 걸었다. 그런데, 멀어도 너무 멀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고 한참을 다시 걸어가고, 마치 공항을 이용하는 것처럼 걷고 또 걸어야 했다. 이럴바에는 차라리 시청역으로 가는 국철을 다시 이용하는게 나아도 한참을 나을뻔했다. 그냥 고분 고분 반대편에서 오는 전철을 타고 시청에서 내릴걸 그랬다. 언제나 선택에 대한 후회와 미련은 따르기 마련이다.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라는게 세상에 존재하기는 할까. 그래도 뭔가 마음에 들지 않게 어긋한 판단과 선택은 화가 나기 마련이다. 짜증을 동반자 삼고 한참을 걸은 후에야 공항철도를 타게됐다. 서울역 다음에 홍대입구역에서 내리면 된다. 그리고 홍대입구역에서 내렸다. 순두부집으로 가려면 1번출구로 나가야 한다. 부지런히 1번출구를 찾았다. 그런데, 좀 낯설었다. 홍대입구역이 그렇게 크지가 않은데, 여기는 크고 왠지 익숙한 역과 비슷했다. 6호선 환승도 보이고 공항철도도 있고, 왠지 공덕역과 비슷했다. 환승하는 곳이라 홍대입구역과 비슷한가 싶은 마음에 반신반의하며 나가는 곳만을 확인하며 걸었다. 길은 점점 익숙했다. 대전집으로 가려면 서울역이나 용산으로 가야하는데, 언제나 공덕에서 갈아타기 때문에 익숙하고 친근한 역이 공덕역이다. 그 공덕역과 비슷했다. 출근할 때 서울역에서 내려서 6호선 응암방향으로 가려고 올라가던 길마저 비슷하다. 여기가 어디인지 찾아보니 저쪽 구석에 공덕역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공덕에서 내린 것이다. 한 정거장을 더 가야 했는데, 이번에는 한 정거장을 일찍 내린 것이다. 서울역에서 다음정거장에 내리면 된다. 다음 정거장이 홍대입구역이다. 그런데 착각이었다. 돌아보면 시청에서 서울역까지 한정거장인데, 그걸 놓치나라는 자책과 후회가 뇌리에 남았던것같다. 그 무의식이 다음정거장도 한정거장이라는 암시를 준게 분명하다. 한정거장만 가면 되는데, 한 정거장, 한 정거장... 그래서 갈아타는 역에서도 한 정거장만 가자고 무의식이 명령을 내렸던것같다. 최면에 걸린 것처럼 다음 정거장에서 그 못다한 한 정거장을 실행했던 것이고, 그것은 또다른 실수가 되었다. 그리고 두 정거장 가야하는데, 한 정거장만 내리는 바람에 다시 공덕에 내리고 말았다. 선택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머리에 잔상으로 남아 끝나는게 아니다. 후회는 다시 다음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공덕인줄 알고서야 연이은 실수로 인해 짜증스런 허탈감이 몰려왔고, 반드시 가고야 말겠다는 고집스러움이 견고해졌다. 공덕에서 6호선을 타고 다시 홍대입구역을 가기로 했다. 어떻든 가면 되는게 아닌가. 그렇게 가다가 상수에서 내렸다. 왜 상수에서 내렸는지는 모르겠다. 익숙한 역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고, 상수에서 홍대입구역을 가깝게 생각했는지 아니면 순간적으로 익숙한 이름에서 갈아타는 생갹을 연결했는지도 모른다. 상수에서 내리고 나서는 홍대입구역을 가려면 그 다음 한 정거장인 합정에서 내려야 한다는 걸 알았고 내려서 반대편이 아닌 그냥 한정거장을 더 가야한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시청에서 한정거장만에 내리면 될 걸 한정거장에서 내리지를 못했고, 서울역에서는 한정거장만 생각을 하다가 한정거장에서 내리는 바람에 두정거장을 가지를 못했다. 6호선을 타고서는 한정거장만 더 가서 2호선으로 갈아타면  될 것을 한정거장 전에 내려서 결국 홍대입구역을 가지 못했다. 한정거장만 더 가면 쉽고 익숙해질 일인데 그걸 못했다는 미련과 후회는 계속해서 다음 판단과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 한정거장을 더 가든지, 덜 가든지 그렇게 꼬여버린 하차는 결국 ‘홍대입구역에서 내리는걸 포기하게 했다. 




선택을 하는건 나지만, 나의 선택과 판단이 온전하고 정확하다는 신뢰를 보내기에는 상황과 환경에 취약하다. 지나온 선택에 대한 집요한 후회는 결국 그 다음 선택과 판단에 영향을 미치고 판단은 흐려지게 마련이다. 오히려 그냥 집착 하지않고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현재에 충실했다면, 연이은 한정거장의 실패를 반복했을까? 아닐 것이다. 어떤 것이든 완전한 선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선택한 것을 완전하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완전하지 못하더라도 그게 최선이 되게 하면 될 뿐이다. 완벽한 선택은 없다. 어떤 선택이든 후회없는 선택은 없다. 후회하지 않는다는건 욕망과도 같다. 더 만족감을 가지고 싶다는 것, 좋은 느낌을 더 많이 가지겠다는 욕망은 결정장애를 만들기 마련이다. 


결국 상수역에 내려서는 가장 가까운 평범한 식당에서 순두부찌개를 먹었다. 그렇게 한끼 저렇게 한끼 똑같다. 내가 선택하는 것에 대한 행복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더 누리고 싶은 만족감은 대상에 있거나, 현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선택에 대한 후회는 과거에 발목이 잡히게 되고, 미래는 그 선택으로 인해 뒤틀어지고 왜곡된다. 

'천일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심장을 보던 날  (0) 2018.12.15
날마다 100원을 줍다  (0) 2018.12.06
개나리가 난 참 좋다  (0) 2018.04.06
주술적 리더쉽  (0) 2017.11.25
101 넥스트 콘텐츠, mcn에게 길을 묻다.  (0) 2017.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