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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 에세이

내 심장을 보던 날


혈압이 177이나 오른건 처음이다. 150에 혈압약을 시작했으니 거의 10년만에 170을 돌파한 혈압을 봤다. 조금 어지러운 듯 하여 반신 반의 하며 잰 전자혈압계여서 미심쩍기도 했지만 그래도 너무 높다. 아래 혈압이 122니까, 정상 혈압때 윗 혈압과 같다. 


혈관은 미로와 같고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구성요소여도 나는 절대 볼 수가 없다. 만져 본 적도 없다. 내것이고 내 생존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것들인데, 나는 내 눈으로 직접 본적도 없고 만져본적도 없다. 문제가 있다고 해서 내가 수리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주인인데, 직접 보지도 못하고 다루지도 못한채 죽는다. 이 정도면 의심해야하는게 아닐까. 사기일 수도 있다. 한번도 만져보지 못하고 실체를 직접 내 눈으로 내껄 보지 못했으니, 도마가 이해된다. 사실 우리는 성경을 정해진 결론을 따라 읽어서 그렇지 도마를 욕할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솔직하고 위선적이지 않은 도마는 우리보다 훨씬 나은 성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터이다. 우리의 의심이라는게 앞에서는 웃고 있지만, 이미 마음속에서는 돌아서지 않는가. 돌아설뿐만 아니라 실패와 실수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피하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에는 욕하기까지 않던가. 하지만, 스승앞에서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 도마야말로 우리에게 있는 위선을 볼 수 없는 훌륭한 사람이다. 


보지도 못했지만, 그저 기계가 전해주는 혈관에 대한 위험사인으로 찾아간 병원은 심장문제를 거론했다. 혈관이야 흘려보내는 튜브일뿐이고 그 혈관으로 피를 공급하고 보내는 발전기의 상태를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발전기라는 것도 신기해서 그저 피를 무작정 뿜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뿜어낸 피를 다시 거둬들이기도 한다. 혈관의 문제로 말미암아 발전기가 피를 공급하는데 있어서 과부하가 되면 혈관 어딘가가 약해질뿐만 아니라 과로한 심장역시 이상신호를 보낼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심장이 문제가 생긴다는건 곧 생명과도 바로 연결되는 일이다. 주먹보다 조금 큰 그 살덩이가 수십년을 자체적으로 발전하며 생명을 유지하고 건강을 담보하는 사령부이다. 혈압이 높아지면 자연히 평소보다 더 많은 피를 좁은 튜브의 압력으로 인해 더 생산해야 하고 과부하된 기계는 하얀 증기를 내면서 고장이 나거나 지쳐 늘어지거나 딱딱하게 굳어서 멈출수가 있다. 죽음이다. 죽음보다 더 큰 문제는 없으니, 심장을 봐야한다는 것이다. 심근경색, 뇌출혈등 결국 모든 출발점에는 심장이 있다는 것이다. 혈관 상태는 혈관상태로 정밀하게 검사해야 하고 그로 말미암아 가장 중요한 심장이 혹시 문제가 생긴건 아닌지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가 지시하는대로 누워서 배를 훌러덩 올려부치고 심장초음파를 받았다. 임산부의 배에 액체를 바르고 초음파 검사를 하는건 봤어도 심장을 보기 위해서 가슴에 투명한 액체를 바르는 건 처음이라 움찔한다. 내 몸을 누군가가 들여다보기 위해서 몸을 이리 저리 만진다는 것이 이상하면서도, 사람이 생체 실험을 당하면 이 상태에서 그대로 메스가 들어와 배를 가르고 내  장기들을 들여다 보는 것이구나 싶다. 실제로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배가 갈려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감정은 조그만 것을 가지고도 과장되고 확장된다. 낭만적인것도 아니고 사치스러운 것도 아니고 한가한 것도 아니지만, 나른하다. 감정은 마치 자위같다. 이런 저런 상황을 대입하며 자신을 들여다보면 이전에는 느끼지 못한 새로운 기분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게으르고 나른하기도 하다. 짜릿하거나 몸서리치지거나 어떤 것이든 대리 만족이나 자위를 해본다는 것은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새로움을 느끼는 것이니 사람이야말로 상상을 오락으로도 즐기는 존재가 아니던가. 

 

의사는 내 심장을 보여줬다. 마치, 보물섬에 가는 지도를 발견한 것인냥, 아니 그 지도를 들고 가는 안내인을 따라 마침내 상상만 하고 실제로 본적이 없던 보물섬의 보물들을 본 것마냥 심장은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자신에게 공개했다. 처음에는 흑백으로만 되어있는 초음파 사진을 어떻게 보고 알라는 것인가 싶었다. 아무도 없이 사진으로 인하하면 그게 심장인지, 그냥 그림자인지 누가 알겠는가. 명확하게 칼라로 선명하게 볼 수 없나, 요즘은 3D도 유행이라는데, 의사들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뺏길까봐 그런지도 모른다. 일부러 어려운 단어들을 휘갈겨 쓰면서 자신들만이 전문가인 듯 처방전을 쓰지 않던가. 쉽게 적어도 누구나 알 수 있지만, 일반인들이 의사의 처방전을 보면 그게 무슨 말인지를 모른다. 모른다는건 한 수 꺽이는거다. 상대는 알고 내가 모른다면, 일단 모르니 입다물어야 할 게 아닌가. 중세시대 라틴어로 쓰여진 성경은 대중에게 철저하게 봉쇄됐고 성직자에게만 허락되다보니, 중세 교황이나 성직자의 권위는 신의 지위와 같지 않던가. 본적도 없고 알 수도 없으니 비밀이고 신비이다. 그리고 신화이다. 모른다는건 막연한 신화가 되기쉽다. 사람이 상상의 동물이 아니던가. 모르니 어쩔 것인가, 이런 환상, 저런 환상을 다 붙여도 알 수가 없다. 신화도 오락에서 출발했는지 모를일이다. 어차피 모르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근거를 들이대며 아는 척을 하면 한 수 접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가 신의 대리인이라고 하며 신의 뜻을 전한다고 하면 자신이 모르는 것이니 그냥 믿는게 확률적으로 덜 손해이다 싶다. 그게 황당하고 믿기지 않는 신화가 되면 차라리 그게 더 투자할 가치가 있다. 어차피 모르는 것이니 크면 클수록 좋지 않겠는가. 


   의사는 도무지 알아볼 수 없는 심장 초음파 영상을 보여주며 친절하게 하나 하나 설명을 해갔다. 피가 어디로 들어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 통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그 크기도 재면서 정상적인 사이즈도 알려준다. 판막은 무엇이고 심장이 늘어지는 이유가 무엇이며, 내 심장이 얼마나 늘어졌는지도 친절하게 길이를 재가며 설명해준다. 그건 놀라운 경험이었다. 처음 큰 아이가 태어날 때 느끼던 경외감이랄까. 아니다, 큰 아이는 내 분신을 가지고 나온 또다른 생명을 바라보는 것이니 그 경외감과 이 느낌은 다르다. 내가 내 자신을 본다는 것, 내 자신의 생명을 본다는 경외감은 전혀 다른 기분이다. 저 주먹만한 핏덩이가 서버리면 정신이나 마음속에 그 많은 상상과 환영도 모두 거두어진다. 육신이 정신을 지배하고 육신이 영혼을 다스린다. 아무리 기막힌 상상과 꿈을 갖는다 해도 정해진 육신의 틀이 망가지면 모두 헛것이다.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이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형태가 내용을 만드는 것이 맞다. 저 심장에서 상상이 나오고 신화가 나오는 것이다. 


의사는 환자가 건강한 것보다 이상이 있을 때 존재감이 있다. 세상 사람들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 의사가 존재하는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의사는 스스로의 직업을 포기해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 문제가 생기고 질병이 창궐하고 어찌할 수 없는 건강의 문제가 생기는 것이야말로 의사에게는 좋은 일이 아닐까. 사람들이 아파야 대접받고, 사람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을때야 의사의 존재는 빛이 난다. 의사는 심장을 보여주며 문제가 될 법한, 문제가 될 수도 있는, 문제가 되거나 혹은 아니지만 굳이 문제로 생각하자면 얘기해도 될 듯하나 안해도 그만이라고는 자신있게 얘기하기 어렵지 않은 듯 보인다고 할 만한지 않은 이야기를 한다. 40대 후반, 고혈압약을 먹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을 법한게 아닐까 싶고, 누구에게나 그정도는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가. 그러니까 고혈압 약을 먹지 그러면 할 말이 없다. 그런 나이 아닌가, 중년의 고혈압이라는게. 하지만, 굳이 문제가 무엇인지 이야기를 한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생각보다 심각하거나 중한 상태가 아니라는 걸 느낀다. 의사 역시 어느 선까지는 자신의 명성이나 의사로서의 윤리때문인지 이야기 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이 수만가지다. 실상 천리를 볼수도 없는 우리 눈이고, 천리밖 소리도 들을 수 없는 우리 귀다. 보이지 않거나 들리지 않는다하여 존재하지 않는것도 아니고,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본다고 다 보는것도 아니고 안다고 다 아는 것도 아니다. 우린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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