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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 에세이

29 개똥아 밥먹자

개똥아 밥먹자

 

그는 삼성을 다닌다그에게는그게 자랑이지만 당연히 그의 부모에게는 더 큰 자랑이다그런 그가 3년전 중국출장중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뇌출혈로 쓰러졌고 수술까지 해야했다아내와 3살난 아들이 있는 그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우려했던 실직의 두려움없이 그는 복직을 했고 예전처럼 다시 정상적인 회사생활을 했다성격은 조금 변했다뇌를 열어서 수술을 하게 되면 사람의 성격이 조금 변한다고들 해서인지 그는 조금 신경질적이었고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을 했다예전에는 순하고 착하던 그가 조금은 공격적으로 변했다고들 한다순진하고 철없는 공주같은 그의 부인은 그런 그의 변화가 힘들다고 종종 눈시울을 붉혔다.

 

그의 아내는 공주다그가 그렇게 부른다워낙 곱게만 자란 그녀는 인생을 우아하게 사는 것이 가치관이다. 1년에 두번 이상은 해외로 여행을 나가야 하고 명품이 아닌 것은 걸치지를  않았다집도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드시 고쳐야 했고벌써 두번째 큰 평수의 집으로 이사를 하는 바람에 빚이 많다하지만그녀는 빚에 대해서 관대하다빚은 쓰라고 있는 돈이기에 대출을 받으면 그만이라고 한다그녀의 씀씀이로는 제 아무리 삼성을 다닌다한들 월급쟁이 형편으로는 감당을 할 수 없었다그래서 집안 경제는 그의 몫이었고그녀는 용돈을 받아서 사용한다하지만그녀는 뜬금없이 카드를 발급받았고 폭탄같은 카드고지서는 그와 그녀가 싸우는 주된 원인이기도 했다.

 

그는 그런 그녀를 어떻게 하겠느냐며 그녀가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하지만평생을 알뜰살뜰 살아온 그의 어머니는그런 아들을 보는게 안타깝고 속상할뿐이다칼국수집에 가서 식사를 마치고 나올때도 국물을 싸달라고 해서 집에서 한번더 우려먹는 그의 어머니로서는 며느리의 행태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그럼에도 시어머니로 인해 더 사이가 나빠질까봐 벙어리 냉가슴만 앓을 뿐이었다.

 

도저히 이렇게 살 수 없다며 신경전을 벌이던 날그의 신경증은 폭발했고 그녀는 사이코라며 집을 나가버렸다나가서도그녀는 호텔생활을 전전할 뿐이다.

 

그와 그녀 사이에 큰 아들은 늘  사고뭉치다어린이집에서도 무서운 악동이고늘 초점없는 눈에 어디에 부딪혀 넘어져도 울지도 않고 무언가를 찾아 해매듯이 산만하다할머니는 그런 손자가 짠하다애정결핍으로 저러는게 아닌가 안타까웁다.

 

그렇게 살면서 시간이 흐르면그들은 중학생을 둔 아비와 어미가 될 것이고고등학생을 둔 아비와 어미가 될 것이고누군가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도 될 것이다.

 

어릴적 동네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것만큼 즐거운게 없었다소꿉장난도 하고다방구도 하고 오징어가이상도 하고술래잡기도 하고 망까기도 하고그러다 어스름한 저녁이 되면 대문에서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개똥아 밥먹어” 온 동네에 들리는 그 소리는 모든 놀이를 지워버렸다땅따먹기로 어마 어마한 땅을 가지고 있어도술래잡기로 한창을 신나게 놀아도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네, 엄마” 라고 외치고는 다 버려두고 집으로 신나게 뛰어들어갔다엄마가 부르는 순간 그렇게 치열하던 모든 놀이들이 가짜가 됐다.

 


누군가 개똥아 그만 놀고 밥먹자라는 소리가 그리운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