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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좋더만

[영화] 졸업반, 계급사회에 대한 감독의 절망적 시선


  

  졸업을 앞두고 졸업작품 전시회를 준비중인 미대생 주희와 정우. 미술에 대한 열정과 도도함 그리고 미모로 다른 학생들의 관심을 받는 주희와 그녀를 남몰래 짝사랑하는 정우. 정우는 그런 자신의 사랑을 자신의 만화 작품으로 그려가고 주희는 프랑스 유학을 계획하며 자신의 꿈을 그린다그런 주희가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룸쌀롱을 나가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친구 동화가 손님으로 주희와 잠자리까지 하게 된 것을 알게 되면서, 정우는 분노하게 된다



   연성훈 감독의 영화는 회색빛이다. 그의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우울한 회색빛을 띈다. 검정색에서 흰색으로 나오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채 이도 저도 아닌 중간지대에서 소멸해버리는 개인들. 사회는 소박한 인물들이 꿈을 그려가는 캔버스가 아니라 모든 것이 결정돼 넘어갈 수 없는 고착된 시스템이다. ‘서울역이 그렇고 돼지의 왕에 나오는 인물들이 모두 자신이 길들여진 것도 모른채 계급아래에서 무기력하게 소멸해버린다.

   미술학도인 주희는 미술로 성공을 거둬 신분상승의 꿈을 꾼다. 가난으로 인해 엄두도 낼 수 없는 계급의 벽을 넘기위해 프랑스유학을 마치고 보란듯이 성공을 꿈꾼다. 가치는 결과로 정해질 수 있다고 주희는 믿는다. 그래서 기꺼이 목돈을 만질 수 있는 룸살롱에 나가서 몸을 파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비록 몸을 파는 일이라 할찌라도 자신의 성공으로 보상될 수 있다고 믿는다. 부유한 사람들이 기꺼이 돈을 써줘야 자기같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생기는게 아니냐는 것이다. 프랑스로 유학을 가버리고 나면 어떤 과정이 됐든 결과로 인해 가려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주희의 몸부림은 단호하고 집요하다. 하지만, 연성훈 감독에게 계급은 넘어갈 수 없는 벽이다. 시스템은 견고하고 개인은 무력하다. 쉽게 허용을 하지 않는다.

 


정우는 주희를 향한 짝사랑에 꿈을 꾼다. 그의 작품은 주희에 대한 아름다운 동화이고 꿈이다. 계급을 넘어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주희에게 성은 하나의 방법일뿐이다. 그 성은 정우에게는 짝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환상이지만, 주희에게는 이용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버릴 수 있는 과정일뿐이다. 깨어진 그 환상이 안타까운 순간 정우는 자위를 통해 욕망을 해소해버린다. 자신이 품었던 꿈이 깨져버린 것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어서 일까



   꿈과 욕망, 꿈의 이면에 감춰진 욕망은 모두가 똑같다. 사실은 그 욕망이 계급을 구성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스템아래 누구에게나 감춰져있는 그 욕망이 사실은 시스템을 구성하는 중요한 속성이라는 것을 알게되는 순간, 계급위에 있는 사람이나 계급 아래 있는 사람이나 다를게없다. 계급아래 있는 사람에게는 답이 없을 뿐이다. 그래서 영화는 무력하게 물어본다. 한 사회를 공고하게 만들어가는 계급은 시스템에 의해 강제된 것일까, 그 시스템의 속성을 이루고 있는 개인때문일까. 연성훈 영화속에 인물들은 시스템아래 무기력하게 해체되는데, 계급 구조가 무자비하게 견고해 보여서일까 아니면 자신의 욕망을 따라 해체되는 개인이 무력해 보여서가 아닐가. 그렇게 생각되는 순간 주희에 대해 짜증을 부리는 정우가 찌질해 보이기 시작한다.



   짝사랑하는 이에 대한 꿈 그리고 그 아래 잠재된 성적 욕망, 그 성적 욕망은 자신이 꿈꾸는 이성에 대한 또다른 계급구조이다. 또다른 시스템이다. 계급위에 서고 싶은 내재된 개인의 욕망은 그 프레임을 깨버린 대상에 대한 응징. 그래서 정우의 예쁜 만화와 일그러진 분노는 우리 사회와 닮았다. 미래에 대한 예쁜 꿈과 시스템에 도전하는 자에 대한 잔인한 거절. 

   이전의 '돼지의 왕'도 그렇고 '서울역'도 그렇고 연감독에게 계급은 공고한 장벽이다. 그 계급화된 시스템앞에선 개인들은 무력하기만 하다. 만들어진 시스템때문일까 아니면 개인의 책임일까라는 질문앞에 계급적 사고방식은 이미 모든 개인안에 내밀화되어 있다는 메세지를 던지고 싶었던걸까? 사실, 무력해보이는 개인들의 찌질함은 또다른 욕망의 실패자이기 때문이다. 계급을 구조화한 것은 개인들의 욕망때문이고 그 욕망에 실패한 개인들은 루저로 비루한 자아상만 남는다. 그래서 그 비루해진 개인에 대한 동정을 슬프게 거둬가버린다. 그의 도그마로 부터 시작되는 영화는 이미 결말이 예상되어진다. 조금더 진일보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