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병자호란은 국제정세에 적응하지 못했던 무능했지만 예견됐던 한 시대의 비극을 다룬 영화이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자신들이 다루기 좋은 인조를 세운 조정은 그로인해 국제정세의 변화에 대응을 하지 못하고 우리 역사에 가장 굴욕적인 비극을 맞이한다. 남한산성은 그 비극의 한복판에 있었던 무대였다.
3. 역사의 비극은 건조했다. 하지만, 영화는 낭만적인 감독의 상상력이 입혀졌다. 그 상상력이 체화된게 김상헌이다. 명에 대한 사대적인 의식을 가지고 무조건적인 전쟁만을 외쳤다면 극의 긴장감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김상헌은 최명길과의 마지막 대화에서 감독의 상상을 드러낸다. 임금과 백성이 함께 열어가는 세상, 그것이 자신도 맞는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김상헌은 최명길의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새로운 세상은 이전것을 다 허물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자신들이 세운 무능한 인조정권이 모두 사라져야만 진정한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것이다. 그가 척화를 주장한 이유는 그렇게 싸워서 부패하고 무능한 자신들이 세운 정권이 사라지는 것이 진정으로 이 나라를 살릴 수 있는 것이라고 믿은것이다. 그래서 오랑캐에게 머리를 숙이는 군주가 되지 말고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하라고 이야기한다. 척화의 진정한 의미에 감독이 개입을 한 것이다. 척화를 외치던 김상헌이 역사속에서 진정으로 그와같은 의도를 가졌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사실, 자결했던 것자체가 허구이기에 그의 이러한 의도는 다분히 감독의 사상이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최명길은 역사적 사실이었다면 김상헌은 역사적 가정을 입힌 감독의 상상이다. 그래서 김상헌에게 찾아온 계집아이는 새로운 시대, 민들레 씨앗이다. 김상헌은 그 아이를 돌보고, 청나라의 포격이 시작됐을때 필사적으로 그 아이를 끌어안으며 아이를 지켜준다. 새로운 세상을 열어간다는 의미에서 척화는 보다 폭넓은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감독은 생각을 한다. 그리고 대장장이 날쇠는 끝까지 살아남아 그 계집아이를 돌보며, 새로운 낫을 만든다. 하지만, 감독이 보여주고 싶던 진정한 비극은 인조와 대신들이 다시 궁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그러한 굴욕을 만들어냈던 권력은 여전히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것, 얼마나 끔직한 비극인가. 그래서 척화는 그 상징적인 의미가 더욱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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