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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좋더만

상처의 연대, '폴란드로 간 아이들'

인간이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추상미 감독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것같다. . 

폴란드로 가야만 했던 북한의 전쟁고아들의 흔적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폴란드로 아이들’. 전쟁의 비극속에 피었던 사랑은 자칫 신파가 되기 쉬운데, 경계선을 지킨 감독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사실, 추상미감독의 내레이션처럼 다큐멘터리는폴란드로 갔던 아이들 대한 흔적을 찾는게 목적이 아니었던것같다. 인간이 인간에 대해 베풀었던 사랑, 엄혹했던 시절에 위대했던 사람들의 마음, 사랑의 바탕이 무엇인지에 대해 감독은 상처의 연대감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버려진 전쟁고아들의 상처, 독일점령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폴란드 교사들, 탈북청소년들이 지니고 있어야 하는 상처들, 그리고 출연자인 송이의 상처와 추상미 감독 자신의 상처까지. 그리고 그들이 서로 연대하며 같이 아파하고 보듬어준다. 



상처입은 자가 상처입은 자를 사랑하며 연결된다. 상처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상처입은 자가 상처입은 자를 이해할 있기에 상처입은 자를 어루 만져주고 품어주고 안아준다.  

아우슈비츠의 상처입은 유대여인이 버려진 폴란드 고아를 품어주고, 전쟁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그들이 다시 벽안의 아시아의 고아들을 품어준다. 과거의 이야기를 찾아오는 현재의 상처입은 이들이 사랑의 흔적을 찾아가며 다시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간다. 인간이 인간에 대한 사랑만큼 위대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다큐는 당시의 아이들의 기록이나 증언을 활용할 없다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 한계에도 불구하고 묵직한 이야기의 힘을 가지고 있는건상처의 연대라는 주제를 통해 당시의 의미를 명확히 정의하고 그것을 오늘로 확장하는데 균형을 잡았기 때문이다.  

불과 100년도 되지 않은 인류의 역사에 가장 비극적이고 아팠던 전쟁의 상처. 사람은 사라진채 이데올로기가 사람을 제압하고 이념과 이념이 사람을 짓밟던 시대를 살아가지만, 가장 위대한 이념과 이데올로기야말로 사람이 아니던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사람에 대한 마음을 알아가지 않던가. 신앙적인 이야기가 하나도 나오지 않음에도 가장 기독교적인 영화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