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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좋더만

마약왕, '그정도는 아니긴 한데'


워낙 혹평을 받은 영화라 기대가 크지 않았다. 영화는 언제부턴가 우리 삶의 일부가 돼서 같아 영화에 대해 전문가 아닌 사람이 없다. 영화 제목도 좋고, 한때 실존했던 마약이야기를 다루는데다 더구나 주연배우가 송강호니 기대를 가져볼만했는데, 숱한 영화 유투버들과 미디오로 인해 매장당하다시피 했다. 그정도로 평을 받으면 아무리 보고 싶던 영화도 관심을 거두게 된다. 어이없기도 하고 웃긴 일이다. 대중은 자신이 직접 본게 아니어도 누군가의 평가와 전문적인 해석을 듣고 대리로 만족을 하고 심지어는 영화를 본 것으로 대리충족을 한다. 하긴 보아야할 것은 너무나 많으니 효율성면에서 나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암튼 이 영화를 보면서 처음 드는 생각은 모자이크 느낌이다. 어디서 본 것들이 짜맞춰진 느낌이 강하다. 마약에 관한 영화적 소재야 워낙 흔하디 흔한 장면이라 마약에 취한 사람의 반응은 신물나게 봤다. 이제는 어떻게 마약에 반응할까라는건 실제보다 더 많이 아는 정도가 아닌가. 그만큼 흔하디 흔한 소재가 됐다는건 영화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송강호나 조폭두목이 마약에 취해서 환각과 환청에 취하는 장면도 관객은 이미 어떠할지 마음의 준비가 된 장면이었다. 그런 관객들에게 연기를 해야하는 두 배우는 얼마나 고역이었을까. 그렇다면 그 앞뒤의 이야기가 흡입력이 있어야 하는데, 영화는 편집이 엉성했던 것일까. 이야기의 임팩트가 약해다. 



  부패하고 타락한 권력들에 기대 이두삼이 얼마나 올라갈 것인가 그 개연성이 탄탄하길 바랬는데 출연인물들의 설정이 끊어졌다. 배두나는 엄청난 권력의 끈인데 사실 그녀가 어떤 정도였는지는 또 다른 인물의 이야기로만 설명이 되어서 실감이 나지를 않는다. 보여줘야할 것 아닌가, 얼마나 서슬퍼렇게 무서운 여자인가 보여줘야할 것 아닌가. 그녀가 보여줘야 이두삼이가 얼마나 무서운 정글에서 살아남은 사람인가를 보여줄게 아닌가. 이두삼이가 무너지면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가, “ 이나라를 먹여살린게 누군데, 근대화에 앞장서게 한 게 누군데”라고 광기어리게 중얼거리는데, 그게 보는 사람에게 개연성이 없다. 그놈의 개연성 !!! 장면 장면에서 새마을 운동하고 여기저기 직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때우려 했다면 그건 감독의 오판이다. 차 트렁크에 돈 좀 싣는 것으로 그정도로 어물쩡 설정을 해놓고 대충 몇장면 끼워넣으니 마지막에 이두삼의 광기어린 총질이 따로 놀고 끊어진다. 그가 미쳐가는것에 감정이입을 해야하는데 미리 설정해놓은 상태로 몇장면 끼워놓고 나중에 하이라이트에서 송강호 개인기에만 의존하니 골이 될 수가 없다. 전원수비하는 상황에서 손흥민에게만 공을 주고 혼자 개인기로 상대 다 제끼고 들어가 골을 넣으라고 하는거다. 


  박정희시대에 마약으로 거부가 되어 권력 여기저기에 줄을 댔던 이두삼은 박정희의 죽음으로 몰락을 맞이한다. 근데 그렇게 허물어지는 이두삼이 개연성이 없다. 쿠데타가 일어났다고 해도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는 거든 뭐든 몸부림을 해야하는거 아닌가. 전화를 안받고, 배두나가 도망가듯이 돈을 챙기는 것으로 이두삼이의 몰락을 예고만 한다. 그게 전부다. 그렇게 쉽게 무너질 사람이라면 그가 쌓아놓은 과정에 대한 설득 역시 쉽게 허물어질 수밖에 없으니 어디 관객이 그의 광기를 이해하겠는가. 저건 뭐지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든 잘 아는 사람이든, 자기가 잘해오던 방식을 따라서 결국 손해는 누가보는건가. 송강호가 손해를 본다. 이두삼역을 그가 잘했는가 못했는가 따지면 답은 뻔하다. 잘했다. 잘하긴 잘했는데, 이두삼이에게서는 그동안 연기해온 송강호의 다양한 캐릭터가 모자이크됐다는게 문제아닌가. 저렇게 분노하는거, 저렇게 욕하는거, 저렇게 절절거리는거, 저렇게 유머 던지는거, 잘 안다. 송강호가 그런거 잘 하는거 안다. 그래서 송강호를 좋아하고 송강호가 나오는 장면마다 돌아가면서 보는게 아닌가. 그런 송강호의 이미지에 기대다 보니 송강호의 연기조차 관객은 피곤하고 식상해진다. 잘하는 연기가 식상한거다. 연기가 잘하는데 식상하다? 그건 관객이 이야기에 몰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개연성이 받쳐주거나 이야기의 흐름에 관객이 몰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송강호 개인의 연기력에 기대니 그가 하는 모든 연기가 잘하는데도 식상한거다. 


그래도 안타까운건 이 영화가 그정도로 폭망하는게 맞나 싶다. 70 80년대 분위기를 정말 잘 살렸고, 당시 시대 분위기도 고증에 철저했다. 물론, 그런 시대물이 워낙 넘쳐나다보니 그 시대물을 잘 살렸다는 것만으로 영화가 흥행을 끌수는 없을 것이다. 송강호도 지루해보인다고 하지만, 그래도 송강호는 송강호가 아니던가 송강호의 연기를 보는 것도 재미가 있고 게다가 실존했던 인물의 이야기니만큼 흥미를 가지고 볼만한 요소도 있다. 실재했다는 이야기는 대박을 내기는 힘들어도 그런 인물의 흥과 몰락을 보는건 언제나 안정적인 이야기 구도가 아닌가. 그런데, 너무 일찍 여론이 만들어지고 경쟁적으로 흠집을 내면서 영화를 보는 개인들의 선택까지 영향을 미치고 말았다. 다양한 미디어의 홍수는 개인의 선택에 있어서 자유까지도 침해하는 요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