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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좋더만

명자누나, 공감능력을 잃어버린 기독교에 대한 아픈 지적


명자누나는 저자의 누나 이름이다. 아이를 임신하고 척추에 육종이 생기면서 암으로 고통스런 시간을 살아야 했던 누나를 통해 고난의 의미를 신앙적으로 풀어간 책이다. 고난을 소재로 써내려가는 간증은 독자의 호기심과 감성을 자극할 수 있음에도 이한영교수는 그 사실을 최대한 객관화하려고 노력한다. 기억은 객관적일 수 없고 상상과 포장이 될 수 있다는 전제를 가졌기에, 수십년이 지난 후에야 누나가 겪었던 고난을 꺼내며 고난에 대한 신학적 견해를 다룬다. 자칫 간증과 신학적 설명이 겉돌 수 있을 듯 하지만 이 책 명자누나는 세가지의 챕터를 통해 명확한 메시지를 전한다. 그래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누나의 고통스런 27년의 시간들에 대한 호기심은 보다 본질적인 고난이라는 의미에 대한 깊은 사색을 허락한다.

 

이 책은 세가지의 챕터, 공감과 하심, 그리고 선으로 이뤄져 있다. 고난에 대한 정답은 무엇일까. 고난받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의 정답은 공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기독교는 언제부턴인가 정답을 강요하며 정답을 빙자해 상처를 입히고 자신의 욕심을 채운다. 날카로운 말들과 율법적 행위들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찌른다. 고난의 의미가 가지는 신비한 메시지는 사라지고 오로지 성공만이 기독교의 가치가 된 세대에 고난을 통한 신비한 하나님의 섭리와 선의를 저자는 말하고자 한다.

 

저자는 각 챕터마다 성경의 인물들을 제시하며 고난이 가지는 신비한 의미들을 설명한다. 공감을 이야기할때는 이사야를 통해 고난받는 이사야로 하여금 피묻는 메시아를 떠오르게 하신다. 마리아를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아들을 메시아로 내려놓는 고난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비로소 알게 된다. 고통받는 아들 예수를 내려놓고서야 비로소 마리아는 하나님을 섭리를 알게 되는 것이다. 고난을 통해 하심하게 하는 것 하나님의 섭리이기도 하다.


이한영 교수는 명자누나를 포함한 가족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고난의 신비라는 건 결국 합력해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이라 설명한다. 야곱을 통해서도 선을 이야기 한다. 우리는 야곱의 축복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야곱에게 정말 축복된 시간이 있었던가.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하여 성공한 사람, 하나님이 축복하여 엄청난 재산을 소유한 사람, 축복을 받기 위해 복을 침노했던 사람으로 기억을 한다. 결국 그에게서 애굽의 총리인 아들 요셉이 나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저자는 하나님이 이뤄가시는 일을 거스르고 자신의 욕심과 성공을 위해 달려갔던 야곱이 어긋난 퍼즐로 인해 얼마나 고통을 받아야만 했던가를 이야기 한다. 바라오앞에서 비통하게 자신이 살아온 삶을 회한하는 야곱은 성공한 인생이 아니었다. 레아와 라헬, 두 아내로 인한 고통과 그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로 인한 고통,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 자식들에 의해서 죽여져야 하는 고통. 야곱은 지난한 세월 고통과 슬픔속에 살아야만 했다. 그 고난의 시간을 지나면서 결국 자신이 붙잡고 싸워야 하는 것은 세상이 주는 복과 성공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주관하는 하나님임을 알게 된다. 자신이 가로채야 했던 것은 장자의 권리나 아버지의 축복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의 언약이었음을 알게된다. 결국, 그 모든 것들 통해 선을 이뤄가시는 하나님처럼 이한영교수의 삶속에서도 고난을 통해 선을 이뤄가시며 삶의 모든 조각들을 맞춰가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짧고 작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구약학자인 저자의 깊고 해박한 성경지식은 기독교에서 회피하는 주제인 고난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고난을 마주한 현대 기독교의 비뚤어진 자화상에 대해서도 통찰력이 깊다. 고난에 대한 정답이 공감이라는건 가장 기독교적 가치임에도 언제부턴가 공감능력을 잃어버린 이 시대 기독교에 대한 지적도 아프다. 이 책은 고난으로 인해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많은 이들에게 궁극적인 답을 제시하며, 그 모든 것을 합력해 선을 이뤄가는 하나님의 발자취를 담담하게 찾아도록 위로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