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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좋더만

[영화] 앙:단팥인생이야기, 삶에 대한 따스한 시선

일본 영화를 보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그안에 사람들의 이미지가 서로 달라서 당황스러울때가 있다. 그럴때면 국가나 사회가 학습시키고 세뇌시키는 것들이 얼마나 무서운것인가를 느끼게 된다.  일본 영화안에 언제나 잔잔하게 담겨있는 사람과 삶에 대한 따스한 시선들이 그렇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음식을 소재로한 영화에서 인생의 깊은 성찰이 배어있는 점은 그들만의 독특한 미장센이고 특징인것같다.  왜 음식과 관계된 영화에서 그렇게 일본인들은 특별한걸까, 그 소재안에서 풀어가는 이야기들을 즐겨 차용하는 것일까.  


단팥빵을 만드는 ‘센타로’는 빚을 지고 있기에 그 빚때문에 조금만 단팥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그에게 어느날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찾아와 아르바이트 자리를 부탁하게 된다.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를 몇번 거절하게 되지만,  나중에 이 ‘도쿠에’ 할머니가 직접 만든 팥소를 먹어본 ‘센타로’는 그 맛에 감탄을 하면서 할머니를 채용하게 된다. 할머니가 만드는 특별한 판소는 곧 동네에서 소문이 나게 되지만, 할머니가 나병환자라는 것을 알게된  동네사람들은 단팥빵을 사먹지 않게 되고 결국 할머니는 스스로 그만두게 된다. 가게를 자주 찾던 ‘와카나’ 학생과 함께 할머니를 찾아나선 ‘센타로’는 할머니와 나환자촌을 방문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편견뿐이었던 그들의  삶을 보게 되고 할머니를 다시 만나게 된다. 한편, 단팥가게 주인은 조카를 대동하고 가게를 이전과 다른 새로운 가게로 바꾸기 위해 조카를 ‘센타로’에게 부탁을 하는데... 

이 영화에 세 등장인물은 모두 고립된 사람들이다. ‘도쿠에’할머니는 나환자라는 지독한 사회적 편견안에 갖혀 살고 있었고, ‘센타로’는 무심코 벌인 싸움으로 인해 장애인이 되어버린 친구에 대한 미안함으로 마음을 닫고 살고 있으며 ‘와카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집을 나와 가출을 하게 된다.  고립과 단절, 이 영화는 그렇게 사람사이에 고립되고 단절된 것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고 허용한 편견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모두가 섬처럼 닫혀있는 그 공간에서 나와 누군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그 진실을 알게 되고 그 진정성을 알게되면 다른 사람들 마음의 문을 열수가 있다. 기계적으로 만들어진 업소용 ‘팥소’를 처음먹어본 ‘도쿠에’할머니는 이 단팥빵에는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팥소를 제작한다.

이 팥소를 만드는 과정에서 ‘센타로’는 두가지에 놀라게 된다. 첫째는 할머니가 귀를 기울여 팥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 팥이 살아온 그 세월의 흔적을 귀하게 여기고 들으라는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그 과정이 길었다는 것이다. 당과 엿기름을 섞고서 두시간이나 보낸다는 것에 ‘센타로’는 당황을 하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단팥빵은 동네에서 유명한 단팥빵이된다. 많은 사람이 사랑하고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많은 사람이 기다리는 빵이된다. 어쩌면 이 영화가 주고자 했던 메세지는 이 팥소를 만드는  ‘도쿠에’할머니의 모습과 설명에 다 담겨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결국 영화 마지막, 단절과 고립되어있던 영혼인 ‘센타로’는 사람들을 향해 문을 열고 나온다. 조그만 노점상에서 자신이 만든 단팥빵을 사라고 목청껏 소리를 지른다.  기계적인 업소용 팥소를 치워버리고, 단판가게 주인의 속물적인 근성에서 벗어나 센타로는 자유로워진 것이다. 마치 ‘와카나’의 카나리아가 새장을 나와 자유를 얻게되었던 것처럼.  누구든 편견을 걷어내고  그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진정성을 가지고 다가갈수 있다. 우리 스스로가 또는 사회가 만들어놓은 편견과 선입견에 갖힌채 우리는 얼마나 시간을 헛되게 소모하며 살아가는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그 꽃이 지고, 다시 흐드러지게 피어가는 동안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만든 온갖 편견과 선입견의 굴레에 갖혀 얼마나 외로운 섬처럼 살아가는가. 그안에서 우리는 새장안에 갇힌 새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들, 아름다운 인생을 고립된채 살아가는가.  

왜 일본은 음식과 관련된 영화를 끌어다 사람과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할까. 먹는 것이야말로 가장 정직한 것이어서 아닐까. 독이  될수도 있지만, 약이 될 수도 있고, 먹는 것이 곧 그 사람이라고 보면 근원적으로 먹는 것에는 삶의 희노애락이 다 담겨있어서 그런게 아닐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장치가 바로 음식이니까.  그 음식안에는 내가 있고, 우리가 있고, 사회가 있고 그 모든 관계를 잘 투영할수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이 영화에는 벚꽃장면이 많이 나온다. 활짝 만개한 벚꽃이 피는 날 ‘도쿠에’할머니가 찾아왔었고, 그 잎이 지고 다시 해가 바뀌어 ‘벚꽃’이 피는 장면까지 유독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도쿠에’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꽃 ‘벚꽃’이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때가 있으면 그 아름답던 시간도 지나가고, 지나가지만 다시 봄이 와 흐드러지게 예쁜 벚꽃을 피워주고 그 장면들이 이 영화에 자주 나온다. 인생은 참 아름다운 것인데, 우리 스스로가 가둬놓은 감옥에서 그렇게 소모하고 지나버린 시간들이 얼마나 안타까운가, 이 영화에는 그렇게 사람에 대한 일본영화 특유의 지루할만큼 잔잔한 따스함이 묻어있다. 

다만, 이야기할 것들이 많다보니 인물들과 소재의 집중도가 생략되어있었다는게 조금은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에 대한, 인생에 대한 따스함을 느끼고 싶다면 기꺼이 볼만한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