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호를 일컬어 산군이라고 부른다. 또는 산주라고도 부른다. 산군을 잡는게 어렵고 불가능한 이유는 대호가 바로 산주이기 때문이다. 포수들의 표현대로 자신의 구역, 자신의 나와바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호를 찾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영리하기까지 해서 잡는 것이 불가능하다. 주인이 아닌 사람이 주인을 잡으려고 하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
영화 후반부로 가면 대호는 무자비하고 공포스런 존재가 된다. 철포대라는 무지막지한 부대를 풀어놓아도, 심지어 대규모 일본 군인들을 풀어놓아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거의 모든 부대군인과 포수들을 학살한다. 총알을 맞아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이 주인인 땅에 침범한 침입자들을 향해 경고하고 응징한다. 대호의 포효에는 조선포수들과 같은 비겁함도 없고 비굴함도 없다. 결국, 겨울을 날수 없는 일본군들은 다음의 봄을 기약하며 물러가게 된다. 그리고 대호는 많은 사람들의 상상속에 신선으로 신화가 되어버린다. 산주는 산주로 끝까지 남는다.
똑같이 가족을 상실한 대호와 천만덕은 서로 처지가 똑같다. 아내를 잃고 자식을 잃고 마지막에는 함께 목숨을 다하게 된다. 서로를 죽여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숙명도 같다. 대호가 천만덕에게 천만덕이 대호에게 투영이 된다.
이 영화의 포인트가 무얼까? 분노가 아닐까. 대호는 산주이다. 산군이다. 자신이 주인으로 있는 산에 자신을 잡으러 오는 이들을 향한 분노. 총알을 맞아도 수많은 병력이 몰이를 해도 피범벅이 되면서까지 자신이 이 산의 주인임을 대호는 분명하게 보여준다. 자신의 가족이 살아가는, 자신이 주인인땅에 쳐들어와 자신의 암컷을 죽이고 새끼를 죽이는 이들을 향한 분노에 조금도 물러섬이 없다. 그 분노는 침입자들에게는 공포가 되고 절망이 될뿐이다.
이 영화의 배경은 일제치하이다. 조선인들이 산주로 있는 곳에 일본인들이 침략을 하고 들어왔다. 그 산주들은 저항은커녕 스스로 일본군이 되어 조선인이라는 것을 숨기려고 한다. 자신을 조선인이라 부르는 소리에 오히려 자신은 조선인이 아니라며 고함을 질러댄다. 어차피 왜정시대 왜정아래서 먹고 살면 되는 것이 아닌가 산주들은 비굴할뿐이다. 산주들은 너무 비겁하고 비굴하고 나약하다. 왜정아래서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데 비굴하고 비정해질뿐이다.
짐승한마리도 자신의 가족이 죽어가고 자신이 주인인 곳을 빼앗기면 분노하고 포효하는데 우리는 분노할줄 아는가. 피범벅이 된 대호의 포효에는 비굴하고 무기력하고 비겁한 시대를 향한 무서운 호통이 들어있는게 아닌가 싶다. 너희들도 너희들이 사는 곳에 산주가 아니냔말이다.
대호의 지나친 의인화라는 글들이 종종 보인는데, 이 영화의 주인공은 대호이다. 대호가 천만덕의 아이를 보호하는 것등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그정도는 충분한 가능성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대호의 CG작업은 가끔 어색한데가 있기는 해도 이 정도라면 전혀 흠잡을데 없는 사실감과 극적 긴장감을 잘 살리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대호의 얼굴과 천만덕의 얼굴이 묘하게 비슷하게 느껴지도록 연기한 최민식의 연기의 내공은 박수를 받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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